T 평화를 빕니다.
성거산(聖居山)의 가을-
높고 맑은 하늘과 단풍들기 직전의 한껏 푸르름은
마치 내 인생 여정을 반영이나 하듯
맘껏 기지개를 켜는 시원함이다.
성거산은 우리 수도원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대전교구 소속 줄무덤 성지로 유명한 곳.
성거산이란 지명을 두고
형제들은 모두가, "참으로 희한하네!"라고들 한 기억이 난다.
애초에 수도원 터를 잡을 때 그러한 지명을 사전에 알고 잡은 게 아니니 신기할 밖에...
미상불 우리네 삶의 터로서는 탁 들어맞는 이름이니,
30여분 등산을 하면 옛 박해시대에 이름없이 순교한
줄무덤 성지가 나온다.
그 뉘 이곳을 "聖居山(거룩함이 머무는 산) 이라 이름하였을꼬?
박해로 인한 순교자들이 나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지명일텐데
어쩜 예견이나 하듯 그리 지었을까?
또 성거산 수도원에는
우리 "한국 순교성인 관구" 소속으로
하느님 품으로 먼저 가신 여러 형제들의 유해가
나란히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침 성무일도가 끝나면
매일 영면한 형제들의 무덤가를 찾아 통공의 로자리오를 바치기로 했다:
거기엔 둘째 가라하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하셨던 백안젤로 형제님이
마지막 자리에 계시고,
나의 수련장이시자 전 관구장이셨던 하멜키올 형제님이- 담배를 피우시면서, "헤헤 혼배쟁이, 맛세오!"하시며 금방이라도 환생하시어 반기실 것만 같다.
또 주꼰스탄소 신부님은 어떤신가? 예전 정동에 함께 사실 때, 늘 주일마다 스파케티를 손수 요리하시면서, "맛세오, 외출하지 마세요. 좋아하는 쪼코렡 있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차분하고 인자하신 목소리로 다독거려 주시던 모습이 선하다.
한국말을 못하시지만 늘 "허허..."하시면 잘 통하시던 키가 구척이시고 미남이셨던 아뽈리나리스 할아버지는 어떠셨는가? 어느날 타임즈지를 사갖고 오시다가 수도원 앞 낮은 계단에 걸려 넘어시지고는, 엉덩이 골반에 이상이 생겨 불과 얼마 후 이내 팔십 몇세의 생을 마감하신 멋진 할아버지!
전안젤로 형제님은 내가 수도원 입회 직전 정동수도원 현관에서 처음으로 만난 분- "그냥 살지, 수도원엔 왜 들어오려고 하나?"하시면서 건장한 체격으로 웃음 반 농담 반을 던지시던 분.
내가 수련받을 때 대전 목동수도원에서 번갈아 가며 우리 수련 형제들이 병수발을 해드렸었다. 덩치가 크신 분이 하느님 나라가 가까워지시니까 밤새토록 어린애처럼 엉엉 우시며 예수님께 하소연하시던, 그러시면서 웬 때 아닌 철에 참새구이 잡숫고 싶다 보채시며 맛있게 드시던 그 모습도 잊혀지지 않는다.
조벨라도 할아버지는 평소 깐깐한 분이셨지만, 나와는 각별한 사이셨다. 이견 차이로 티격태격한 적도 있었지만, 늘 맛난 쪼코렡을 꿍겨 두셨다가는 사랑스런 손자에게 하시듯 손에 쥐어주시곤 하시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다.
내가 존재하고 기억하며 기도드리는 한,
이미 가신 형제님들 앞에서는
죽음이 죽음 아닌 산이들과 마찬가지로
통공 속에서 교감을 나누는 것이니,
어찌 산 자와 죽은 자가 구별될 수 있을까.
영원한 안식을 빌면서
살아있는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형제애를
나눔에 서로가 복된지고!
聖居山이여,
작고하신 형제들과 함께
영원히 거룩함이 머무는 산이여,
삶과 죽음을 하나되게 하는 거룩한 산이여!!!
성거산(聖居山)의 가을-
높고 맑은 하늘과 단풍들기 직전의 한껏 푸르름은
마치 내 인생 여정을 반영이나 하듯
맘껏 기지개를 켜는 시원함이다.
성거산은 우리 수도원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대전교구 소속 줄무덤 성지로 유명한 곳.
성거산이란 지명을 두고
형제들은 모두가, "참으로 희한하네!"라고들 한 기억이 난다.
애초에 수도원 터를 잡을 때 그러한 지명을 사전에 알고 잡은 게 아니니 신기할 밖에...
미상불 우리네 삶의 터로서는 탁 들어맞는 이름이니,
30여분 등산을 하면 옛 박해시대에 이름없이 순교한
줄무덤 성지가 나온다.
그 뉘 이곳을 "聖居山(거룩함이 머무는 산) 이라 이름하였을꼬?
박해로 인한 순교자들이 나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지명일텐데
어쩜 예견이나 하듯 그리 지었을까?
또 성거산 수도원에는
우리 "한국 순교성인 관구" 소속으로
하느님 품으로 먼저 가신 여러 형제들의 유해가
나란히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침 성무일도가 끝나면
매일 영면한 형제들의 무덤가를 찾아 통공의 로자리오를 바치기로 했다:
거기엔 둘째 가라하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하셨던 백안젤로 형제님이
마지막 자리에 계시고,
나의 수련장이시자 전 관구장이셨던 하멜키올 형제님이- 담배를 피우시면서, "헤헤 혼배쟁이, 맛세오!"하시며 금방이라도 환생하시어 반기실 것만 같다.
또 주꼰스탄소 신부님은 어떤신가? 예전 정동에 함께 사실 때, 늘 주일마다 스파케티를 손수 요리하시면서, "맛세오, 외출하지 마세요. 좋아하는 쪼코렡 있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차분하고 인자하신 목소리로 다독거려 주시던 모습이 선하다.
한국말을 못하시지만 늘 "허허..."하시면 잘 통하시던 키가 구척이시고 미남이셨던 아뽈리나리스 할아버지는 어떠셨는가? 어느날 타임즈지를 사갖고 오시다가 수도원 앞 낮은 계단에 걸려 넘어시지고는, 엉덩이 골반에 이상이 생겨 불과 얼마 후 이내 팔십 몇세의 생을 마감하신 멋진 할아버지!
전안젤로 형제님은 내가 수도원 입회 직전 정동수도원 현관에서 처음으로 만난 분- "그냥 살지, 수도원엔 왜 들어오려고 하나?"하시면서 건장한 체격으로 웃음 반 농담 반을 던지시던 분.
내가 수련받을 때 대전 목동수도원에서 번갈아 가며 우리 수련 형제들이 병수발을 해드렸었다. 덩치가 크신 분이 하느님 나라가 가까워지시니까 밤새토록 어린애처럼 엉엉 우시며 예수님께 하소연하시던, 그러시면서 웬 때 아닌 철에 참새구이 잡숫고 싶다 보채시며 맛있게 드시던 그 모습도 잊혀지지 않는다.
조벨라도 할아버지는 평소 깐깐한 분이셨지만, 나와는 각별한 사이셨다. 이견 차이로 티격태격한 적도 있었지만, 늘 맛난 쪼코렡을 꿍겨 두셨다가는 사랑스런 손자에게 하시듯 손에 쥐어주시곤 하시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다.
내가 존재하고 기억하며 기도드리는 한,
이미 가신 형제님들 앞에서는
죽음이 죽음 아닌 산이들과 마찬가지로
통공 속에서 교감을 나누는 것이니,
어찌 산 자와 죽은 자가 구별될 수 있을까.
영원한 안식을 빌면서
살아있는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형제애를
나눔에 서로가 복된지고!
聖居山이여,
작고하신 형제들과 함께
영원히 거룩함이 머무는 산이여,
삶과 죽음을 하나되게 하는 거룩한 산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