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온 누리에 평화를.
매일 1시간 이상은 운동삼아 오르는 인왕산 길. 같은 길을 오르내리면서도 실증을 내는 법이 없는 나의 천성! 집에 도착할 즈음엔 으례히 땀으로 뒤발을 하곤 하지만 몸은 오히려 상쾌한 느낌이 든다. 물론 오를 때와 내려 올 때는 주로 다른 길을 택하곤 하지만...
그런데 똑같은 길을 수없이 반복하며 걸으면서도 같은 장소 같은 사물에 늘 새로움을 발견하여 휴데폰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니...그러는 내 자신이 참으로 신기할 정도다. 똑같은 대상이라도 시간과 날이 감에 따라 멈추지 않는 변화를 감지하는데 예민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마도 늘 밥상에서 대하는 밥이나 반찬이 별로 다를 게 없으면서도 매 끼니마다 새롭고 맛있게 먹는 이치와도 비숫하다고나 할까. 오죽하면 산책로중 지나치는 '경희궁' 내의 노오란 단풍들 가운데 유독 중앙에 위치한 빠알간 한 그루 단풍나무가 있어, 가을 단풍 철엔 어김없이 돋보이는 그 모습에 매년 앵글을 들이대곤 하니까. 똑같은 장면에 똑같은 단풍인데도 그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그야말로 감탄 자체이니, 아마도 타고난 내 본성이 그런가보다.
겨우내 죽은 듯 싶다가 이른 봄부터 긴 성곽 곁에 올라오는 풀이며 야생화들을 대하면 겨우내 죽은 듯 하다가 이내 다시금 부활하는 듯한 그 생명의 신비에 어찌 찬탄을 금할 수 있으랴! 온통 세상을 화사하게 바꾸어놓는 진달래 개나리 철, 가을이면 성곽을 따라 장관을 이루는 코스모스!...철따라 요술 지팡이에 닿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는 듯한 자연의그 신비를 필설로 어이 다 표현할 수 있으리요.
인왕산 중턱쯤에 올라 성곽을 끼고 멀리 바라다 보이는 북한산 보현봉도 그 존재 자체는 변함이 없건만, 볼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청명한 날 다르고 구름이 흘러가는 정경이 다르며 겨울 눈이 쌓일 때... 각기 달라 한 두번 셔터를 눌러댄 게 아닌 것이다.
어쨌든 카메라 앵글에 포커스를 맞출 적에는, 그 대상에 대한 보기에 좋음과 아름다움이 하나로 매치될 때 이뤄지는 작업이렸다. 똑같은 사물을 대하면서도 쉽게 싫증을 내기보다는 늘 좋고 아름다움의 새로움을 발견하게 되는 내 천성이기에 하느님께 대한 감사를 빠뜨릴 수가 없다.
어쩌다 여기 함께 지내는 여러 형제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면, 내 어린 시절이며 많은 여행담에 대한 추억들을 판도라의 상자에서 줄줄이 꺼내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 것 역시, 그것들로 인해 현재의 일상에서 곧잘 느끼는 살뜰한 기쁨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미 해버린 이야기들이지만- 어렸을적 잃어버렸던 강아지를 찾은 일이며 우리 집 수탉이 아랫 동네 싸움 닭과 싸워 끝내 이길 수 있었던 사건, 또 수덕사 동리 외딴 집의 개 2마리와 만난 희한한 일이며 백양사 등산 길 도마뱀과의 해후, 정동 수도원 정원에서 만난 얘쁜 쪽재비의 남달랐던 행동...등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사건들이 아니었기에 떠올릴 때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추억들인 것이다.
아마도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건 하나 하나에서, 보통 흔히 지나쳐버리면 그만일 것도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들여다 보면 뭔가 새롭게 달라 보이고, 좋고도 아름다운 피사체가 되는 게 아닐까. 엊그제 산책로에서 만난 예사롭지 않은 참새들의 행동- 발에 밟힐새라 가까이에서도 날아갈 기색은 전혀없이 자연스럽게 뭔가 먹거리를 헤집고 있었다. "얘들아, 잘못하면 발에 밟히겠네!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어야겠다." 그렇게 바싹 휴데폰 카메라를 들이대어도 전혀 피할 기미가 없는 걸 보면, 마치 딴 나라 세상에서 온 참새들만 같았다.
사실 바위나 돌맹이 하나라도 그 존재의 의미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신성함이라는 내 지론대로, 무궁무진한 좋음과 아름다움으로 널려있는 이세상에 던져진 단 일회적인 내 존재이려니 어찌 감사드림을 소홀히 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