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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녀의 죽음

by 김맛세오 posted Oct 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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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평화가 강물처럼...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세상살이 욕심을 내려 놓으라는 교훈이겠다.

각양각색의 삶처럼
죽음의 모습도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엊그제 어느 모녀가 차 사고로 동시에 임종했다.
치매 증세가 약한 90세 노모와 그 어머니를 봉양하던
4남매중 막내 딸이- 위로 언니 오빠들은 모두 해외에서 지내고-
차가 돌진하는 바람에 보도 언덕 길을 걷던중
그만 급사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평소 본당에서건 어디서건 남을 돕는 일에 열정을 다 했고,
어머니에 대한 그 딸의 효심이 얼마나 갸륵했던지
잘 나가던 간호학과 교수직도 포기,
그제도 모친과 함께 걷던중 또 다른 2사람과 함께 4명이 죽은 게다.
운전을 한 30대 젊은 자매의 운명은 또 뭐란 말인가?

'죽음'을 생각할 때,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물론 거개의 사람들은 뭇 가까운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룩하고 축복받는 임종이기를 바란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랬다.
글라라 성녀와 동료 형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슬픔을 아우른 채
'죽음' 마져도 매우 가까운 자매와 포옹하듯이
'자매' 죽음이라 하면서 거룩하신 품에 안겨으니까 말이다.

반면에 아무리 거룩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어도
처참한 죽음일 수 밖에 없었던 성인들도 적지 않으니,
순교 성인들의 생애가 대부분 그러했으니까...

세례자 요한은 사후조차도 존경은커녕
현재는 팔레스틴 진영에 속한고로 어느 누구도 얼씬거릴 수 없는
순례조차 불가한 현실이잖는가.
또 성 토마스 베케트(12세기 초 영국 캔터베리의 주교)라는 분은,
왕의 하수인 기사 자객들에 의한 무고로 성당 안에서 피를 흘리는
순교를 당했는가 하면, 그 시신조차도 영영 찾을 수 없게 버려졌다.
성인의 사후 직후엔,
친구였던 왕의 엄명으로 캔터베리가 한때는 오랜 세월
유럽의 유명한 순례지로 꼽혔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

우리는 어느 누구도
'이것이 거룩하고 저것이 추하다'라고
죽음의 잣대를 섣불리 들이 댈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죽음의 형태가 어떠했던,
얼마만큼 생전에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베품'의 삶을
잘 살았느냐 하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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