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를 빌며...
최근 산청, 성심원에서 3일간의 연수가 있어 다녀왔다.
3일 내내 그곳은 북상하는 태풍의 영향으로 시원한 해갈의 시간을 마주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다녀 온 시간과 길이 마치 성심원 앞을 유유히 흐르는 경호강과 파노라마 사진이나 그림처럼 아름답게 그려지면서, '산다는 것'의 의미가 내 안에 더욱 분명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복음 말씀인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과도 일맥 상통하는 이야기들을 일기처럼 쳐내려가본다.
'산청, 성심원''하면 우선 세 분이 생각난다. 나환우로서 눈이 먼 '마리나' 자매님과 몇 달 전부터 그곳에서 기쁘게 봉사하시는 '젤뚜르다' 자매님 그리고 가까이 '진주'에서 살고계신 '빅토리아' 할머니.
그 세분에겐 자주 뵙는 것도 아니니 그냥 빈손으로 뵙는 것보다 작은 거라도 준비해 드리고픈 마음이 드는 거다.
성심원 내 요양원에 계신 '마리나' 자매님은 먼 세월을 거슬러 '84-85년도에 글라라 할머니들 집의 일원으로 계신 분들 중 이제 다 돌아가시고 유일하게 남아계신 분으로서 앞을 못보시는 나환우시다.
오랜 세월 나균으로 입이 삐뚤어지고 눈이 멀으신 채 80세를 훨씬 넘게 살아가고 계시니, 힘겹게 살아가신 그 생애를 대하면 웬지 마음이 짠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할머니를 대하면 그냥 포옹을 해드리고 일그러진 얼굴이지만 어린애처럼 얼굴을 보듬어 드리게 된다.
할머니 왈- "오메, 수사님! 어찌 이 못난 저를 이렇게 찾아 주실꼬...지는 예, 해드릴꺼 하나도 없으니 수사님 위해 미사나 봉헌해 드릴꼬마! 근데 어찌 이리도 하느님께서 빨리 안데려가시능교?"
'젤뚜르다' 자매님은 성심원에서 매우 기쁘게 봉사하시면서 인근 재속회에 양성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시는 하느님의 일꾼! 아주 오래 전 창원에서의 어머니 장례식을 인연으로 만나, 당신은 날 친동이나 여기듯이 늘 생각해 주는 분이다. 시간이 없어 잠깐 뵐 수 있었지만, 준비해간 십자가 끈과 작은 케잌을 드렸더니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격으로 산에서 마련해 두셨던 세가지 귀한 액기스를 두고두고 복용하라고 주시는 거였다.
또 진주의 빅토리아 할머니는 이번엔 직접 뵐 시간은 없었지만, 준비해 간 작은 폴란드 (마르렌카) 케잌을 전해드렸더니, 전화를 통해 내 생각으로 눈물을 다 흠치셨단다. 워낙 가까운 친척이 없이 외롭게 지내오신 분이라 더욱 그러셨나보다.
할머니는 내가 30초반에 뵈올 때 50이 훨씬 넘으셨으니, 내가 꾼 꿈해몽으로 절묘하게 심각했던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던 관계로 인연이 되어 마음 자리에 지워지지 않는 분! 세월이 무심한지, 그런 일이 있은지 30년이 지나서야 할머니 근황을 다시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 진주에 갈 일이 있으면 애인이라도 만나듯이 쪼르르 할머니를 뵙고 식사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여라."라고 하신 오늘의 복음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하늘 나라'란 의미가 멀리 다른 데 있다고 보지 않는다. 연수를 다녀오면서 만난 세 분을 통해 이미 하늘 나라가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가 가까이 만나는 사람이나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사건 안에서 분명 하느님 나라를 가까이 접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진복팔단의 의미 역시 그런 같은 맥락이잖는가? 기쁘게 복음의 말씀을 사노라면 이미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와 있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복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