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와 자비
2월의 첫 날! 시끌벅절하던 연말 연시가 지나 2016년 금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났네요.
찬바람을 이기려 외출시엔 두터운 잠바에다 벙어리 장갑을...그러나 행려자들이나 가난한 독거 노인들에겐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겨울인가요. 하지만 뺨에 스치는 찬바람이나 꽃샘 추위로 견디기 쉽지않은 버거울 2월이겠지만, 곧 춘삼월의 따사한 봄기운이 돌겠지요.
거의 매일 인왕산쪽으로 1시간 정도 산책을 하다보면, 때로는 칼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지만,
이내 스치며 지나갈 짓궂은 웃음 바람이려니, 그 마져 정겨운 미소로 답하지요. 차가운듯 밤하늘의 헤이는 별들도 곧 봄을 수놓으리라는 기쁨의 재잘거림만 같구요.
메마른 깊섶 마른 풀잎이나 황량한듯 서울 성곽 주변의 돌들조차도, 내가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서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확연히 달라지니까요.
확실히 내가 무엇에게 깊은 의미가 되어 줄 때, 차가운 겨울 바람조차도 그냥 바람이 아니고, 냉냉한 하늘의 별들도 따사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는 것을...왜 언니 바람과 자매 별들인지, 그 속삭임에 결코 무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오늘 새벽 눈을 뜨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즉,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습관, 환경으로 살아가느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특히 오늘같이 추운 날엔 이블 속을 박차고 나오기가 얼마나 싫은지! 그러나 40여년 세월 동안 잘들인 습관으로 쉽게 일어날 수가 있고, 성당에서의 공적 성무일과를 바치기 이전 1시간 정도 개인 기도를 드릴 수 있어 참으로 감사드리는 매일의 시작이지요.
반면에 좋지않은 습관을 들이는 건- 매사에 게을러지는 것이지요. 좋은 습관에 길들여지기보다는 내 좋지않은 의지를 더 정당화시켜 결국 게을러질 수 밖에 없다는 것. 이런 게으름 앞에서는 오랜 세월의 수도서원의 약속이나 하느님께 바치는 공적 일과 따위는 한낱 게으름의 소치일 따름이니까요.
예전에 작고하신 어느 할아버지 수사님이 곧잘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지요.
"하느님께 바치는 건 매우 아까와 해, 말로만 십자가를 둘러댈 뿐, 걸핏하면 공적 기도조차 빠뜨리면서 제 좋아하는 일은 열심히 잘 찾아하고 맛있는 거나 꼬박꼬박 삼씨 세끼는 잘 챙겨드는...수도자가 그러면 쓰나!"
참으로 허투루 듣지 말아야 할 진언이 아닌가요?
환경 역시 마찬가지인 게, 좋고 나쁜 환경이기 전에 어떤 조건에서든 좋은 환경을 가꾸어 나가는 것은 습관처럼 내가 어떻게 잘 하느냐에 달려있으니까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불교의 명언이 괜한 말씀이 아닌 거지요. 결론은 좋은 쪽으로 마음을 먹고 좋은 습관을 들여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 지내야 한다는 뜻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