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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애벌레와의 해후

by 김맛세오 posted May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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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욘 녀석이 뭐지?"


  낮기도를 하러 경당에 들어서서 성무일도를 펼치려는 순간, 웬 쪼맨한 송충이가 커버에 붙어 꼼지락거리고 있다.  아마도 오전에 정원에서 일을 하던중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녀석이 본의아니게 내 몸으로 옮겨왔고 방황하다가 급기야는 성무일도 커버에까지 붙게 된 모양이다.  순간 징그럽다는 생각으로 떼어버리려고 손가락으로 처버렸지만, 뽄드를 붙힌 것처럼 전혀 떨어지질 않고 계속 자벌레처럼 기는 거였다.  


  "가만, 내가 여기 경당에서 얘를 떨쳐버리면, 정원과는 거리가 먼 딴 세상에서 매양 헤메다 결국 죽을 게 아닌감?"  

  그 순간 여린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얼릉 성무일도 시작을 뒷전으로 한 채 2층 식당 베란다로 달려갔다.  그곳 바로 아래는 애벌레 삶의 터전인 정원이기에, 그곳에서 떨쳐내어 제 삶의 자리로 돌려보내 주었다.


  정원으로 돌려보내준 작은 송충이라는 애벌레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자연의 오묘한 신비를 묵상하게 된다.  갖가지 크고 작은 애벌레들은 나뭇잎을 갉아먹고 자라 때가 되면 여러 모양의 크고 작은 나비가 되고, 그 나비들은 온갖 식물들의 꽃을 수정시켜 열매를 맺게 하는 순환 과정을 거치는,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귀한 존재들임에랴!  

  사람은 벌레들과 더불어 살기 보다는 당장 목전의 짧은 생각으로 해충으로 여겨 보이는 족족 죽이기 싶상인 게 그들과의 우선적 관계가 아닌가.


  내가 가꾸는 정원만 하더라도, 잔디를 잘 가꾼다는 목적으로 매일 풀과의 전쟁이다.  풀을 뽑으면서 내 자신에 대한 묘한 아이러니를 어쩌랴싶게, 인간의 입장에서 '잡초'라고 하는 표현조차 싫어하고 내 개인적으로는 궂이 '풀'이라고 표현한다.

  왜냐하면 풀이 자라지 않는 땅이라면 생명이 자랄 수 없는 사막이나 광야일 뿐인 것을, 이스라엘 성지순례중에 '네겝'이라는 사막과 거대한 '크레이들' 광야에서 직접 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막과 광야가 전혀 없는 한국이라는 이 땅은, 그런 곳에 비하면 어느 곳에서나 풀이 잘 자라고 있는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이 아니던가!  그래서 아무데서나 자라고 있는 풀을 대하면 우선 고마움이 앞선다.  풀은 또 모든 생태계에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기본이 아닐런가.  

   매일 오르다시피하는 인왕산 길의 중간쯤, 성곽 틈에서조차 평소 물없이 자라는 풀을 대하면 참으로 대견한 생각이 들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정원 잔디에서 자라는 풀들과,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매일 전쟁처럽 치루는 풀을 뽑아내며 미안한 마음으로 시소게임을 하는 내 자신의 아이러니를 어쩌지 못하면서도, 나는 틈만 나면 꽃삽으로 풀들의 뿌리를 캐어내고 있다.            


  정원으로 돌아간 작은 애벌레야, 추후 어떤 모양의 나비가 되어 훨훨 나르며 매양 틈만나면 풀을 뽑고 있을 나를 보기도 하겠지.  그러고는 "맛..님, 절 기억하시나요?  얼떨결에 경당에까지 쫒아 들어가 죽을 뻔 했던...하느님 생명의 신비로 이 세상에 태어나, 성모님(상) 둘레에 우리들 터전에 아름다운 장미가 저렇듯 곱게 피어나다니요!  장관스레 꽃을 피우고 있는 활련화와 백일홍...곧 이어 줄을 이어 피어날 수국도 볼만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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