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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 주일

by 김명겸요한 posted Apr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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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죽음 앞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반응이 나타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백인대장의 고백과

 거짓 부활에 대한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의 염려.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것을 들었지만,

 한 사람에게 그 사건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고,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마음을 더 굳게 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이 이들의 모습을 서로 다르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의 시작은 선입견의 유무라고 생각합니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들은 여러 증언을 찾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들이 많은 증인들 가운데에서도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침내 찾아낸 증언,

 그리고 그것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지만,

 그들은 예수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믿고 싶기 때문에

 그 말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로 들리게 됩니다.


 반면 백인대장의 입장에서는

 예수가 메시아이건 아니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해야할 일에 충실할 따름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선입견 없이 예수를 대할 수 있었고,

 예수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래서 예수가 메시아라는 표징을 보았을 때,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첫인상에서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게 되고,

 그 판단은 선입견으로 우리 안에 남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에게서 얻는 정보들을

 내가 그린 그림에 맞추어 보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가진 선입견으로 그 사람을 보기 때문에,

 그 틀에 맞지 않는 모습은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생각한 것과 비슷한 모습이 나타났을 때는

 내가 생각한 것이 맞다는 식으로 확정시켜 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오류로 빠져듭니다.


 하느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

 그것은 간혹 하느님의 모습과 전혀 다르거나,

 하느님의 모습 가운데 극히 일부분만 담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여러 기회에 그 모습을 바꿀 계기를 갖게 되지만,

 내 안에 굳어진 하느님의 모습은

 좀처럼 변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하느님에 대한 굳어진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나 자신을 판단하기에,

 그 판단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고,

 사랑이 아닌 다른 눈으로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성주간을 지내면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무엇인지,

 또 나 자신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하느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굳어진 선입견이 있다면 조금씩 바꾸어 가려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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