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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8부 수요일-동행과 동감

by 당쇠 posted Mar 2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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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제자가 엠마오로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두 제자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름으로 말하면 그 중 하나는 글레오파입니다.
열 두 사도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했던 것을 보면
열심히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속량하실 분이라고
주님께 희망을 걸고 따랐던 제자들이고
이런 희망으로 예루살렘까지 따라갔던 제자들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때만 해도
이런 희망이 성취되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시골 촌놈들이 이제 서울도 접수한다는
한껏 부픈 마음으로 입성을 했는데
주님께서는 너무도 허망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돌아가셨는데도 그들은 예루살렘에 머뭅니다.
따르던 주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어찌할 바를 몰랐기 때문인지
아니면 부활하셨다는 여인들의 말 때문인지 모르지만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흘째가 되자 이 두 제자는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그러니까 두 제자는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믿음도 없고
희망도 상실한 사람들의 대표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일생 주님을 따르겠다고 수도원에 들어왔는데
수도원을 떠나는 형제들이 있고
교회 공동체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동체에 대해 실망하고
형제에 대해 실망하고 떠나지만
사실은 오늘 복음의 두 제자처럼
주님을 잃고 떠나는 것이고
희망이신 주님을 잃기에 떠나는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다가가시고
함께 걸으시며
말을 건네십니다.

주님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주님께서 다가가시고
그들의 길을 함께 걸으십니다.
두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난다고 하였을 때
다른 제자들은 말렸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하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말렸거나
우리와 함께 지내며 다른 삶을 모색해보자고 말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제자는 막무가내로 떠났을 것입니다.
우리 형제들도 수도원을 떠날 때는 막무가내입니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주님과 같은 방법을 써야 합니다.
다가가는 것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렸는데도 저 좋아서 가니 누가 말려.
갈테면 가라지!”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다가가서 함께 가는 것입니다.
내 말을 듣고 내 말대로 그가 하기를 바라지 말고
주님처럼 동행을 하며 그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동행과 동감,
이것이 주님을 떠나는 사람을 돌리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말로써 설득하고
옳고 그름을 가지고 돌리려 하는데
이미 절망하고 막무가내 한 쪽으로 치달리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같이 걸으면서 말을 들어주는 것,
동행과 동감이 최고의 설득인 것입니다.
빵을 같이 나누고 대화를 나누는 것,
성찬의 전례와 말씀의 전례가 최고의 감동입니다.
제자들은 빵을 나눈 후 고백합니다.
“길에서 말씀하시고 성서를 풀이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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