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서두는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입니다.
그런데 심란함의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보통 심란하시나요?
심란함은 분명 좋은 뜻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좋은 일이 있어서 마음이 설렐 때 심란하지 않지요.
그렇다고 안 좋은 일이 있다고 다 마음이 심란하지 않습니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근심걱정이 많겠지만 심란하다 않습니다.
심란하다는 것은 마음이 어지러운 것이고,
부정적인 감정이나 마음이 얽히고설킨 것이고,
그래서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별놈의 감정이 다 일어나 길길이 날뛰고
이런 마음도 들다가 저런 마음도 들다가 하는 건데
그러다가 갈피를 잡을 수 없던 마음이 하나로 잡히면
근심걱정은 있을지라도 심란함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왜 심란하였을까요?
어떤 마음들이 어지럽게 있었기에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던 걸까요?
앞선 13장 끝에서 내가 가는 곳에 제자들이 따라올 수 없다고 하시고,
제자들이 배반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 때문일까요?
그러니까 이별예고와 배신예고 때문일까요?
그런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란함의 더 큰 이유는 다른 것 때문일 겁니다.
지금까지 주님을 따라서 이곳 예루살렘까지 왔는데
이제는 당신이 가는 곳에 따라올 수 없다고 하시니
그렇다면 가던 길을 그만 두고 돌아서야 하는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가던 길을 가야 하는지,
그리고 주님께서 가시는 길을 끝까지 따라 간다고 하더라도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니 어찌해야 하는지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겁니다.
실제로 토마 사도의 말을 놓고 볼 때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제자들은 잘 몰랐습니다.
당신이 이제 제자들의 있을 곳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시고,
아버지의 집에는 제자들이 있을 곳이 많다고 하셨음에도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하고 말합니다.
이렇게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갈지 마음을 잡지 못해 심란할 때는
우리 신앙인은 주님의 길, 그러니까 주님께서 가신 길을 가기로
마음을 잡으면 심란함은 사라집니다.
주님이 가신 길은 십자가의 길이기에 그 길을 가기로 마음잡기 쉽지 않지만
주님이 가신 길은 또한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기에
아버지의 집에 우리가 있을 곳이 많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 길을 가기만 하면 우리 마음에서 산란함은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란 당신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시기에
이 길이야말로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임을 흔들림 없이 믿고
이 길을 뚜벅뚜벅 가는 것이며
이렇게 길을 갈 때 마음의 산란은 더 이상 없음을 믿는 겁니다.
심란하십니까?
주님께서 가신 길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