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면서 평화를 남겨주고 간다고 하십니다.
당신의 떠남이 제자들에겐 바로 평화상실일 텐데 이 무슨 궤변입니까?
이는 마치 엄마가 자식을 떠나면서 자식들에게
“내가 없어도 너희는 부디 평화롭게 잘 살아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산란해지지도 말고 겁내지도 말라고 주님이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은 벌써부터 마음이 산란하고 겁이 나는데
어떻게 평화로울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평화가 세상의 평화와 어떻게 다르기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주님의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 달라야 합니다.
세상의 평화는 이런 경우 당연히 평화가 송두리째 사라지겠지만
주님의 평화는 이런 경우에도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쓰는 표현으로 평상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은 평정심을 잃고 우왕좌왕해도 주님의 평화를 지닌 사람은
아무 일도 없는 듯 평상시와 같은 마음을 유지하고 침착할 것입니다.
평상심이야말로 어떤 경우에서건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기에
거의 모든 종교와 철학이 이 평상심을 유지하는 비결을 얘기하고
저도 인간적으로 그런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까짓것”하는 것입니다.
이 “까짓것”의 철학 안에는 큰일도 작은 일로 만들려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작은 일도 큰 일로 만들고는
“이거 큰일 났네”라고 하는 작은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큰 일이 생겨도 큰일을 작은 일로 만들어 잘 해결하는
큰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작은 잔은 작은 돌이 떨어져도 찻잔속의 물이 온통 출렁이지만
바다는 큰 바위가 떨어져도 잠시 파문이 일다가 곧 잔잔해지는 것과 같지요.
그렇지요. 어떤 일이 너무 큰일이 되어버리면 내가 해결할 수가 없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일이어야지만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러니 큰일, 그것도 안 좋은 큰일을 작게 만드는 법이 “까짓것”이고,
“까짓것” 할 수 있는 마음이 평상심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오늘 겁내지 말라 하시는데 우리 가운데서는
겁쟁이들이 많고, 저도 말은 이렇게 하고, 그렇게 살려고 하지만
어떤 때 보면 큰일이 생길까봐 그런 일을 피하려하고
더 큰 문제는 어려움이나 부담을 줄 것 같은 사람은 피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겁쟁이란 평안을 얻으려다 평화를 잃는 사람입니다.
평안이란 평상시와 다른 어떤 안 좋은 일이 없기를 바라는데
그 바람대로 아무 일이 없을 때 느끼는 거지요.
그러니 이렇게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사람,
그래서 나를 힘들게 하거나 귀찮게 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은
무산안일無事安逸하거나 평안에 안주하려고 할 것이며
나의 평안을 깰 것 같은 사람은 다 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평안은 아무 일 없는 것이지만
평화는 어떤 일이 있어도 평안하고 그 누구와도 잘 지내는 것입니다.
평안은 십자가가 없는 것이지만 평화는 십자가와도 친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무엇이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게 합니까?
잘 아시다시피 그것은 사랑이고
사랑이신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일이 일어날 때 믿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떠나지만 다시 오시겠다는 주님의 말씀,
사랑의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말씀을 믿으면 우리는 늘 평화로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