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복을 받고 은총을 받을까?
우리는 성무일도 아침기도 초대송으로 시편 24편을 노래하며,
누가 하느님의 산에 오르고 거룩한 곳에 머물 수 있는지 노래하는데
하느님의 산에 오르고 머물 수 있는 사람은 “그 손은 깨끗하고
마음 정한 이, 헛 군데에 정신을 아니 쓰는 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독서와 복음을 읽으면서
누가 복을 받고 은총을 받을까 생각하게 보게 되었고,
은총과 복을 받기 위해 주님의 산에 오를 필요도 없고
주님의 산에 오르기 위해 굳이 무엇을 할 필요도 없음을 생각했습니다.
오늘 창세기에서 주님은 손님처럼 아브라함을 찾아오셨고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카파르나움으로 찾아오셔서
백부장과 시몬의 장모와 많은 병자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저 위에 고압적으로 또는 고고하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겸손하신 분이시라고 우리의 믿음을 바꾸고,
우리가 애써 올라가야만 만나주시는 거만한 분이 아니라
낮추는 이를 찾아오시는 낮추시는 분이라고 우리의 믿음을 바꿔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번 성찰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상급을 주시는 분이라고 믿는데
상급을 주시는 분인가, 은총을 주시는 분인가?
상급으로 주시는 분인가, 은총으로 주시는 분인가?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급과 은총은 다른 것인가?
다른 것이 아니라면 상급을 은총으로 주시는 것이 아닐까?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급은 이 세상의 상급과 달리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주시는 것이고,
은총이란 우리의 공로나 성취와 상관없이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받을 권리나 지분을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고
자신의 가난을 인정하고 한없이 낮추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백부장의 놀라운 겸손을 봅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스승 내지 예언자 정도로만 인정하는데
백부장은 식민지 백부장이면서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함으로써
자신을 종으로 자처하였으며
창세기의 아브라함은 자신을 종이라고 하며 손님을 대접합니다.
은총은 물과 같아서 아래로, 아래로 흐르고
그래서 이처럼 아랫사람, 하인下人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