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
오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질투하는 분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질투하는 하느님을 생각하니 퍼뜩 호순이가 떠오릅니다.
언젠가 저보다 다른 형제를 더 사랑하는 저희 수련소의 개,
호순이의 사랑 때문에 질투를 느낀 적이 있는데 그때 저는
내가 저까짓 개의 사랑을 놓고 질투를 하다니! 하며 피식 웃었지요.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 개, 호순이는 나이가 열 몇 살인
요망한 계집이어서 형제들의 사랑을 놓고 저울질하고 줄다리를 잘 합니다.
주인이 여럿이어서인지 주인들을 놓고 자기를 사랑해주러 올 것 같으면
꼬리를 흔들지만 자기를 쳐다보지 않으면 자기도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개조차 자기 사랑을 함부로 주지 않고,
다시 말해서 아무나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사랑의 값을 올리며 질투를 하게 합니다.
그리고 저는 호순이의 이런 간교함에 넘어가거나
저의 사랑의 값을 떨어뜨리거나 하지 않으려고
그를 더 사랑하는 것도 그래서 질투하는 것도 그만 둡니다.
그런데 하느님이라는 분이 저보다 못하는 것은 물론
호순이보다도 못하게 당신은 질투하는 하느님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당신의 격을 떨어뜨리고 품위를 떨어뜨리면서까지 질투하심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질투나 하는 한심한 하느님이십니까?
아닙니다. 나의 사랑을 질투하시는 고마운 하느님이십니다.
왜냐면 저 같은 인간이 질투를 하면 한심한 것이지만
하느님이 하시면 그것은 엄청난 사랑이고
우리에게는 엄청난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내 사랑을 놓고 질투까지 하시다니요?
나의 사랑을 그렇게 원하시는 표시가 아닙니까?
그리고 당신의 격이나 품위를 따지지 않고
저와 우리 인간의 수준으로 떨어뜨리지만
우리는 하느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존재로,
하느님의 질투까지 사는 존재로 높이시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시소처럼 당신을 낮추심으로 우리를 높이시는 사랑이요,
더할 수 없이 당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랑이신 겁니다.
그러니 당신을 사랑치 않으면 3-4대체 걸쳐 벌을 내리고
당신을 사랑하면 천대에 걸쳐 복 주시겠다는 말씀도
진짜 그렇게 쩨쩨하게 구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제발 사랑해달라는 구애의 호소일 것입니다.
나의 사랑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너무도 감사하는 오늘이
그리고 앞으로의 나날이 되도록 하십시다.
왜 그렇게 하시는데요?
철퇴로 쳐 죽여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만큼 악독하게 당신을 괴롭힌 저를 왜 그렇게도 열렬이 미친듯이 사랑하시며 또 사랑해달라고 애원까지 하시는데요?
태초 이래 가장 악락한 죄인인 제가 당신때문에
당신 사랑때문에 오늘도 남몰래 한귀퉁이에서 눈물흘립니다.
하는 것이라고는 죄짓는 것 밖에 없는 제가 당신을 찬미하는 기쁨을 갖습니다.
이 죄인이 감히 하느님 아빠께 찬미를 드린다...?
호순이가 웃을 일이지만요...
그래서 또 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