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전환
상 받기 위해 사는가?
벌 받지 않기 위해 사는가?
젊은 날
내 삶의 동기는 내 바깥에 있었다.
착하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는 위협은
내 안에 긴장과 갈등을 만들었다
천국이라는 막연한 보상은
그분께 잘 보이기 위한 의미와 동기였다.
그래서 타인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과 이용의 가치가 있을 때만 의미가 있었다.
회심의 날
깨달음을 얻어 태어난 아이는
선하신 아버지로부터 사는 법을 배웠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게 될 때까지
나의 관점을 바꾸는 일이
내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
피조물 안에 뿌려진 씨앗들을 돌보게 하시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셨다.
하느님의 신비를 만나는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며 사람들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의 삶이 하느님을 만났다는 증거들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가?
내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성령의 여러 열매들을 볼 수 있는가?
이는 내가 자신에게 하는 질문들이다.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으로 인도하지 않는 관계는
더 이상 내게 의미가 없게 되었다.
하느님과 친밀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고
그분의 영역에 참여하면서
나의 일상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발견한 그분을 현존케 하는 선의 육화,
그분 안에서 누리는 자유,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었다.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인간의 절망을 도처에서 본다.
그 속에서 보는 나의 모습 그것이 두렵다.
삼위일체의 오묘한 신비 안에
참여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은 내 안에 너를 받아들이는 것과
용서를 위한 십자가와 죽음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밑바닥부터 새롭게 바꾸는
위대한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아버지께서 창조의 활동을 우리에게 맡기시고
자비와 선이 덕으로 드러나게 하는 여정에
우리를 초대하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