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를 빕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의 큰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영적인 것에 대한 집착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라고 하신 것처럼 하늘나라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적인 것이지만
그러한 영적인 것일지라도 우리 자신의 만족과 성취감을 누리는
기쁨으로 삼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도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뿐더러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는 이들 마저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생명을 주지만 그러한 영적인 것들을 자신
스스로에 대한 만족과 사랑에 대한 실천이 없는 성취감을
누리는 기쁨으로 삼고자 한다면 자신의 영적인
것들이 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기도 생활과 남들보다
많이 알고 있는 성경 말씀 그리고 스스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신학지식들이 판단기준이 되어서
자기보다 많이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우월감을 가질 수가 있고
더 많이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시기와 질투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당시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 누구보다 강한 신앙과
성경말씀과 율법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는 사랑의 실천 보다 스스로에 대한 만족과
우월감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예수님께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육적인 것 혹은 재물에 대한 집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과 예물을 성전과 제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을 “눈먼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재물은 그 자체로만 보면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쓰이고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각자가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재물이 우리에게 육신의 안락함과 사회적인 지위 그리고
세상의 온갖 걱정거리로부터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우리는 하느님 보다 돈에 더 얽매이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돈이 우리에게 주는 잠시 동안의 기쁨이 영원한
기쁨을 주는 삶과 하느님을 가리게 된다면 우리도 역시
“어리석고 눈먼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우리의 양심 즉, 그리스도의 목소리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예수님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곧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양심 안에서 우리들에게 오늘날
질책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양심 안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목소리 즉,
그리스도의 음성을 보고 들을 수가 있는 양심의 눈과
귀를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인 동시에 우리의 마음과 양심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와도 같은 것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그것은 말로만이 아니라 힘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여러분에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 말씀은
성경책 속의 문자나 전례 독서 안에서 들려오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인
동시에 양심의 소리로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복음을 문자나 말로만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큰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