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소, 거룩한 부르심을 기념하고 집중 조명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전국의 신학교나 수도원들은
많은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의 방문을 받고 행사도 합니다.
이참에 저의 성소의 여정을 되돌아봅니다.
제 성소의 못자리는 시골 공소 신부님 사제관이었습니다.
그때 은퇴하고 오신 신부님께는 뒷바라지 하시는 동정녀 누님이 계셨지만
누님조차도 여자라 사제관에 들어가실 수 없으셨기에
저는 사제관 청소도 하고 식사나 빨래 심부름도 하였습니다.
학교 갔다가도, 그리고 놀다가도 때가 되면 사제관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하느님의 사람이 아닌 신부님의 사람,
신부님처럼 되어야 할 사람으로 운명 지어졌습니다.
다른 한 분은 저의 누나입니다.
누나는 할아버지 신부님이 얼마 계시다가 다른 곳으로 가신 후
매일 저를 10리 떨어진 본당으로 미사를 데리고 다니며
성인전을 들려주었고 신부되라고 하셨지요.
그러니 저는 언제, 어떤 동기로 성소를 결심하였는지 도저히 알 수 없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렇게 사제는 저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저를 성소로 이끈 것은 프란치스코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누군지, 수도자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사제되려 수도원 들어온 저에게 프란치스코가 등장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전기도 변변히 없던 때 선배로부터 들은 몇 가지 얘기만 듣고도
저는 프란치스코에게 완전히 홀려버렸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제쳐놓을 정도로 프란치스코는 저를 완전히 사로잡았고
저는 프란치스코 따라 하기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도 프란치스코와 먼 존재였습니다.
몇 년을 기를 쓰고 따라 하려 했지만 가당치도 않은 저만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프란치스코 때문에 수도생활을 포기하였습니다.
밖에 나가 살며 프란치스코라는 우상을 지워버리자
그때 예수님께서 복음을 통하여 저에게 주님으로 비로소 오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와 수련을 받았습니다.
다음으로 저를 부른 것은 세상이었습니다.
저의 문제가 해결되자 세상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고
세상이 무엇을 나에게 필요로 하는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하도록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핵환자들을 위해서 뛰었고 후원회도 세웠습니다.
버스 안내양들을 위한 야학활동도 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순회 소 공동체 운동도 하였으며
공장 노동자로도 일하였습니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 정의 평화 운동에도 적극 가담하였습니다.
이런 성소와 사명감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북한 주민과 탈북자나 장애자를 위한 활동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부르심과 소명은
역시 형제들을 위한 봉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은총을 주셔서 밖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형제들을 가장 사랑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만큼 형제들을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환속하는 많은 형제들 때문에 실망감과 좌절감을 맛봐야 했습니다.
성소의 위기는 아니었지만 인생의 위기를 이때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력해졌을 때 하느님께서 저를 다시 부르셨습니다.
사제로 부르신 것도,
프란치스코에게 부르신 것도,
세상에로 부르신 것도,
형제들 봉사에로 부르신 것도 아닌,
바로 당신께로 부르셨습니다.
이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다른 부르심이 다 쓸데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주님의 부르심은 저를 당신께로 부르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자고 저를 부르신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하고 만족한,
그래서 진정 가장 행복한 同居에로 부르신 것입니다.
제 마지막 날 다시 성소에 대한 회고를 한다면
이때를 다음과 같이 회고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으며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당신의 상처로 우리의 병을 치유하시는 모범을 보이셨지만
모범은 따르지 않고 행복한 同居에만 안주하였다고 회고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전국의 신학교나 수도원들은
많은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의 방문을 받고 행사도 합니다.
이참에 저의 성소의 여정을 되돌아봅니다.
제 성소의 못자리는 시골 공소 신부님 사제관이었습니다.
그때 은퇴하고 오신 신부님께는 뒷바라지 하시는 동정녀 누님이 계셨지만
누님조차도 여자라 사제관에 들어가실 수 없으셨기에
저는 사제관 청소도 하고 식사나 빨래 심부름도 하였습니다.
학교 갔다가도, 그리고 놀다가도 때가 되면 사제관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하느님의 사람이 아닌 신부님의 사람,
신부님처럼 되어야 할 사람으로 운명 지어졌습니다.
다른 한 분은 저의 누나입니다.
누나는 할아버지 신부님이 얼마 계시다가 다른 곳으로 가신 후
매일 저를 10리 떨어진 본당으로 미사를 데리고 다니며
성인전을 들려주었고 신부되라고 하셨지요.
그러니 저는 언제, 어떤 동기로 성소를 결심하였는지 도저히 알 수 없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렇게 사제는 저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저를 성소로 이끈 것은 프란치스코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누군지, 수도자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사제되려 수도원 들어온 저에게 프란치스코가 등장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전기도 변변히 없던 때 선배로부터 들은 몇 가지 얘기만 듣고도
저는 프란치스코에게 완전히 홀려버렸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제쳐놓을 정도로 프란치스코는 저를 완전히 사로잡았고
저는 프란치스코 따라 하기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도 프란치스코와 먼 존재였습니다.
몇 년을 기를 쓰고 따라 하려 했지만 가당치도 않은 저만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프란치스코 때문에 수도생활을 포기하였습니다.
밖에 나가 살며 프란치스코라는 우상을 지워버리자
그때 예수님께서 복음을 통하여 저에게 주님으로 비로소 오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와 수련을 받았습니다.
다음으로 저를 부른 것은 세상이었습니다.
저의 문제가 해결되자 세상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고
세상이 무엇을 나에게 필요로 하는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하도록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핵환자들을 위해서 뛰었고 후원회도 세웠습니다.
버스 안내양들을 위한 야학활동도 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순회 소 공동체 운동도 하였으며
공장 노동자로도 일하였습니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 정의 평화 운동에도 적극 가담하였습니다.
이런 성소와 사명감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북한 주민과 탈북자나 장애자를 위한 활동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부르심과 소명은
역시 형제들을 위한 봉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은총을 주셔서 밖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형제들을 가장 사랑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만큼 형제들을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환속하는 많은 형제들 때문에 실망감과 좌절감을 맛봐야 했습니다.
성소의 위기는 아니었지만 인생의 위기를 이때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력해졌을 때 하느님께서 저를 다시 부르셨습니다.
사제로 부르신 것도,
프란치스코에게 부르신 것도,
세상에로 부르신 것도,
형제들 봉사에로 부르신 것도 아닌,
바로 당신께로 부르셨습니다.
이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다른 부르심이 다 쓸데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주님의 부르심은 저를 당신께로 부르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자고 저를 부르신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하고 만족한,
그래서 진정 가장 행복한 同居에로 부르신 것입니다.
제 마지막 날 다시 성소에 대한 회고를 한다면
이때를 다음과 같이 회고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으며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당신의 상처로 우리의 병을 치유하시는 모범을 보이셨지만
모범은 따르지 않고 행복한 同居에만 안주하였다고 회고할 것입니다.
저의 성소이겠지요!
주님은 저보다 더 저를 잘 알고계시니~
비록 미약해보이는 자리이지만
제가 선 이곳에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생명의 길이 주께있사오니
주님! 제가 어디로 가리이까..
신부님의 삶의 나눔..감사드립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듯......아름다운 남매의 동행에
주님께서는 당쇠님의 행복한 동거 안주에도 찬사를 보내시리라 믿습니다.아멘!
사랑이지요.!!
신부님께서는 엄청 큰 사랑을 하고 계십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
나를 부르신 이가 하느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느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느님 은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