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희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이 단어를 과거형으로 사용하지 않고,
미래형으로 사용합니다.
즉 어떤 것을 희망한다고 할 때,
그것은 이미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사건과 연관이 있습니다.
즉 아직 벌어지지 않은 것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벌어지지 않은 것이
꼭 벌어진다는 보장이 그 안에 있지 않다는 것도
한 특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기대를 하면서도
그 불확실함에 대해서는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즉 희망이라는 단어 안에는
기대와 불안이 함께 있습니다.
한나는 여든네 살이 될때까지
성전에서 메시아를 기다려 왔습니다.
하느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주실 것을 희망하면서
성전에서 단식과 기도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결혼 후 일곱 해를 살고 과부가 되었기에
적어도 40여년을 메시아에 대한 희망 속에서
홀로 살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녀도 그 40여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기대감은 기다릴 수 있는 힘을 주지만,
불안감은 그 힘을 빼앗아 갑니다.
즉 기대감이 불안감보다 더 커야
사람은 그것을 기다릴 수 있고,
그것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
한나는 어떻게 해서 불안보다 더 큰 기대를 할 수 있었을까요?
한나는 긴 시간을 단식과 기도로 살았습니다.
매 순간 하느님을 찾고
그렇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 안에 머물렀기에
하느님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희망하는 것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라는 점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한 번 더 기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렇게 하느님 안에 머무를 수 있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긴 시간 기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 오랜 기간의 불안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한 번 더 기도할 수 있을 때
그 기도가 모인다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불안감을 떨쳐 버리고
꾸준히 기도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