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지난 토요일 복음에서 그러니까 오늘복음의 바로 전 복음에서
주님은 사람들과 가족들로부터 미쳤다는 의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더러운 영에 들렸다는 말을 듣습니다.
사실 정신이상과 악령에 들린 것이 오늘날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증상이 비슷한 측면이 있는데 주님도 당시 사람들에게
둘 중의 하나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예루살렘에서까지 율법학자들이 내려오는 것이
그만큼 예수님의 문제가 보통이 아니었나 봅니다.
다시 말해서 시골의 작은 문제였다면 예루살렘에서까지 알 수도 없었고,
미친 것이 확실해서 뒤따르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내려오지도 않았을 테지요.
아무튼 예수님께서 보이시는 것은 보통 사람의 것이 아니거나 이상이었는데
그것이 뭐냐가 당시에는 전국적인 관심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저도 가끔 제게 가져오는 문제들을 만날 때
정신이상적인 것인지 악령적인 것인지는 분간이 어려울 때가 있지만
뭣이 성령적인 건지 악령적인 건지 분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성령과 악령은 사랑을 기준으로 보면 바로 구별이 되기 때문이고
오늘 주님 말씀대로 일치와 분열로 바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경우 문제는 주님께서
분열을 야기하는 분으로 율법학자들에게는 보인다는 점입니다.
율법학자의 눈에는 지금까지 아무도 율법을 문제 삼지 않았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는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잠하고 평화롭던 이스라엘이 예수님의 등장으로
시끄러워지고 사분오열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지금 생각해도 율법학자들에게 예수님은 영락없이
사회불안을 조장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율법의 권위에
예수님이 처음으로 도전을 하고 그래서 이스라엘 사회가
산산조각으로 깨질 지경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으로 몰려들고 따르니 그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빨리 내려와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앞에서 악령적인 성령적인지 분간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한 저도
너무 심하게 공동체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을 보면
그에게 사랑이 있는지
그리 하는 것이 공동체를 위한 건지 공동체를 깨려는 건지
분간이 잘 안 되며 그에 대해 참 악마적이라고 감히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가 악마적이었는지 성령적이었는지 모르지만
형제를 악마적이라고 한 제가 오히려 악마적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종종 조금씩 바꿔 바치곤 합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제 안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북녘동포에게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그들을 외면하고픈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형제를 악으로 보는 악에서 저를 구하소서.
뭐 이런 식이지요.
형제 안의 영을 식별하기에 앞서
형제를 악으로 보는 악이 내게 없는지
내 안의 영을 먼저 식별해야 함을 성찰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