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솔로몬의 전 생애를 아는 우리는 그러니까 말년의 솔로몬에 대해서
아는 우리는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오늘과 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하게 되고, 같은 뜻에서 저도
죽을 때까지 이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합니다.
우선 자신을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내내 생각하고,
그래서 겸손과 어린이성을 계속 유지하면 잘 살고 잘 죽을 겁니다.
노인이 되면 어린이가 된다고 하는데 저도 나이를 먹을수록
나쁜 뜻에서가 아닌 좋은 뜻에서 어린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단순하고 자기의 약함을 겸손히 인정하는 어린이 말입니다.
두 번째로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하는데
저도 나이를 먹을수록 듣는 귀는 어두워지겠지만
<듣는 마음>이 갈수록 더 생기면 좋겠습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우리가 잘못 늙으면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고집이 세고 노상 자기 말만 하려고 들 수 있는데
고집을 부리지 않고 자기 말은 줄이는 것을 말하는 거지요.
그래서 <듣는 마음>의 깊은 뜻은 사랑이고,
더 친절하게 얘기하면 겸손이 밑바탕 된 사랑입니다.
사실 <듣는 마음>을 지니게 되면 인생을 실패하지 않을뿐더러
자신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한다는 면에서 인생성공입니다.
이것은 귀가 얕아서 이말 저말을 잘 듣고
그래서 잘 속아 넘어가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지요.
귀가 얕아서 남의 말에 잘 속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어리석음이고
사랑이 아니라 욕심입니다.
욕심을 부추기는 남의 말에 속는 것일 뿐입니다.
이에 비해 <듣는 마음>은 마음 안에 욕심은 없고 반대로
다른 사람의 말을 담을 수 있는 여백과 여유가 있는 것이며
겸손과 사랑이 바탕이 된 깊이 있는 이해Understand인 것입니다.
끝으로 솔로몬은 분별 능력을 달라고 하는데
저도 죽을 때까지 분별능력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물론 나쁜 뜻으로 쓰는 분별심分別心과는 다른 거지요.
아시다시피 분별심이 불교에서는 고통과 불행의 원천이지요.
좋고 싫고를 너무 따지고
성과 속을 너무 따지며
흑과 백을 너무 가리면 그 마음은 지옥이 된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왜 그렇습니까?
좋고 싫은 것의 분별심은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취향이며 좋은 것만 소유하려는 욕심의 산물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보시기에 좋거나 다른 사람에게
좋고 유익한 것이 아니라 내 취향에 좋고 나쁜 것인데
내 것으로 소유하려다 나쁜 것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을 소유하려다가 덜 좋은 것이 나쁜 것이 되고
본래 선인데 욕심에 덜 차는 것이 악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에 비해 분별력은 모두에게 유익한 것으로서의 선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서의 악을 구별하는 능력으로
공동선에 이바지하고 모두를 행복케 하는 것입니다.
본래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만드시고 보시니 좋다하신 거지요.
인간이 욕심으로 가지려다 망가뜨린 선이 악인 거지요.
듣는 마음과 분별력을 청하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인 것처럼 생각되누 것이 많은 제가 사는 세상에서 솔로몬처럼 매순간순간 하느님께 청하여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고 행하는 날들이 되게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