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오래 전에 빵의 기적 얘기를 읽을 때
주님은 왜 감사의 기도를 먼저 드리셨을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기도를 드린 다음에 그리고 기적이 일어난 다음에
당신 기도를 들어주심에 대해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것이 보통인데
주님께서는 왜 감사의 기도를 먼저 드리셨을까 생각한 것이고 그래서
언젠가는 이 감사의 의미에 대해 나눔을 해야겠다고 생각도 했었지요.
그래서 오늘 이 감사의 의미를 보고자 하는데
진정 주님은 왜 청원 기도는 바치지도 않고,
왜 감사의 기도를 먼저 드리신 것입니까?
우리는 보통 청원기도를 먼저 하고
그 기도가 가납되었기에 감사기도를 드리지요.
감사의 기도는 우선 일곱 개의 빵에 대한 감사입니다.
빵이 일곱 개가 있음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4천 명에 빵이 일곱 개밖에 없다고 과소평가하거나
7개밖에 안 주셔서 사랑할 수 없다고 불평할 수 있는데
주님은 빵이 일곱 개씩이나 있다고 감사드리시는 겁니다.
그것도 제자들이 그것을 내놨으니 더 감사할 일입니다.
자기만 먹으려고 움켜쥐지 않고
가진 것을 다 내놓은 제자들에게 감사!
그런 제자들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미 주신 은총에 대해서 감사할 뿐 아니라
이제 아버지께서 주실 은총에 대해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가끔 미리 감사드리는 경우가 있지요.
자기의 중요한 자리에 자리를 빛내 달라고 청하면서
와 주실 거라고 믿고 미리 감사드린다고 하거나
필요한 것을 청하면서 주시리라 믿는다면서 미리 감사드리지요.
이 경우 우리는 정말 믿고서 감사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는 믿음의 감사가 아니라 믿음을 무기로 강박을 하는,
내가 이렇게 믿으니 자기의 믿음을 깨지 말라는 강박의 감사지요.
물론 우리는 주님을 믿습니다.
아버지를 겁박하여 원하는 것을 뜯어내는 그런 분이 아니라고
사랑의 아버지요 주시는 아버지로 굳게 믿으시는 분임을 믿지요.
사실 우리는 안 주셔도 믿어야 합니다.
안 주시는 것도 사랑 때문이고
그래서 안 주시는 것도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이런 믿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빵이 있어야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주시지 않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을 믿기는 참으로 어렵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빵 주시는 사랑만 사랑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빵 주시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음을 믿어야 하며
그래서 어떤 때 빵을 주시지 않을 때 그 주시지 않음이
은총체험과 사랑체험의 확장을 위한 것이라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셔도 사랑, 안 주셔도 사랑임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믿는 우리가 되고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