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복음에서 많은 말들과 중요한 말들을 놔두고
마지막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고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왜일까?
그런데 왜 이 말이 제 마음에 들어왔냐면 이 문장이 없어도 되는데
왜 이 문장을 굳이 집어넣었을까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장들의 구성과 앞 뒤 문맥을 살펴보니
이 문장이 7장의 끝이 아니라 8장의 1절임을 알게 되었고,
8장 2절에서 주님께서 성전에 나오시자
사람들이 다시 주님 주위로 모이는 얘기로 연결이 됨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제 느낌이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는 말이 제게는
그저 단순히 집으로 돌아갔다는 뜻이 아니라
“저들은 제각기 뿔뿔이 흩어졌다.”는 뜻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7장에서 사람들은 주님을 놓고 제각기 주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가 누구인지 모두 궁금해 하고 나름대로 주장을 펴는데
그렇지만 일치된 의견이 없고, 이에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은 <그 예언자>, 곧 메시아가 아니라고 단정을 하자
8장 1절에서 사람들은 서로 등을 돌리고 흩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8장 2절에서 주님이 성전에 다시 나타나시자 다시 모여든 것인데
우리도 주님이 안 계시면 주장들만 난무하고,
주장들이 충돌을 하다보면 갈등 때문에 끝내 등을 돌리고 갈라지게 되지요.
주장이라는 것이 본래 그런 것입니다.
주장主張은 <자기>의 표시입니다.
달리 얘기하면 자기/Ego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표시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죽여야 한다고 얘기할 때 보통
자기의 주장이나 고집을 죽이라는/꺾으라는 뜻으로 얘기하지요.
그리고 이때의 자기는 개별 주체로서의 자기가 아니라
일치를 거부하고 거역하는 자기를 말하는 거지요.
그런데 사실 우리에게는 자기 주체가 있어야 하고 주제적으로 살아가야지
자기 주체도 없이 남에게 휘둘려 살아가면 안 되지요.
사랑을 하기 위해서도 주체가 필요하고,
일치라는 것도 다른 주체들이 하나를 이루는 것이지요.
각기 다른 사랑의 주체이신 삼위가 계시기에
하느님이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시듯
각기 다른 주체가 없으면 일치라는 말도 있을 수 없지요.
그러므로 사랑의 주체로서의 자기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 없는 분열의 주체로서의 자기가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도 가능합니다.
사랑이 없는 자기도 분열적이지만
하느님이 없는 자기는 더더욱 분열적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사랑이 없는 나보다 하느님이 없는 내가 더 분열적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래서
이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사랑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느님은 모든 것이시며 우리 공통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고
하느님이 없는 사랑은 사랑도 이기적인 사랑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없을 때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도 편애를 하고,
사랑으로 편 가르기를 하고 왕따를 시키기도 하잖아요?
자기애나 가족애에 갇히기도 하고요.
그러니 아무리 사랑이 좋다 해도 하느님 없이 사랑하려 들지 말 것입니다.
"하느님이 없는 자기는 더더욱 분열적"
모든 것이 부족해서 하느님께서 안계시는 제 삶의 모습일지라도
저는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하느님(의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 한걸음 한걸음씩이거나, 게걸음이지만 그래도 하느님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