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해야 영원히 산다고 말씀하시는데
요즘 자살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이 세상살이에 넌덜머리를 내고
고통스런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을 저주한 욥처럼 되라는 뜻인가요?
한마디로 이 말씀은 비관적이고 염세주의자가 되라는 말씀인가요?
이 말씀을 잘 이해하려면 오늘 복음의 앞의 말씀들을 잘 봐야 합니다.
그리스 사람, 즉 이방인들이 찾아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종합을 하면 하느님과 하느님의 영원한 나라를 믿지 않는 이방인들,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이렇게 이 세상 삶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살고자 한다면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다음 말씀을 보면 그것이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섬기는 사람도 같이 있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다”
복음의 여인들과 사도들처럼 예수님을 섬기며 따라다니면
예수님을 따라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에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원한 하느님 나라로 가시는 길이시고
아드님이 가시는 곳은 아버지가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길이신 예수님을 섬기며 따라가면
생명이신 예수님과 함께 생명을 영원히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따라나서야 한다는 것인데
섬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선 종처럼 항상 주인 옆에 있으면서 주인의 시중을 드는 것입니다.
주인의 곁을 떠나서는 안 되고 마리아처럼 주인의 발치에 늘 있는 것이고,
다음은 주인의 명을 받드는 것입니다.
주인집의 일을 주인이 하라는 대로 마르타처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타처럼 어떤 때 투덜거려서는 안 되고
지금은 바빠서 안 된다고 해서도 안 되고
이것은 싫어서 안 한다고 해서도 안 되며
주인이 시키는 일이 싫고 고통스러워 면해 달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처럼 고난의 시간을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할까 하다가도
고난의 시간을 겪으라는 아버지 뜻을 따르기 위해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당신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과 함께 우리가 하느님을 섬길 때 오늘 1독서에서처럼
하느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당신의 자녀와 백성으로 삼아주십니다.
두 번째로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이 가시는 그 목적지를 같이 향해가는 거고
주님 외에 다른 것은 다 포기하고 떠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길을 나선다는 것, 길이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떠남과 다다름이 같이 있고, 상실과 성취가 같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 너무도 애착한다면 어떻게 떠날 수 있겠습니까?
떠남을 그토록 두려워하면 어떻게 다다를 수 있겠습니까?
상실을 그토록 두려워하면 성취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떠나지 않고 다다르려 하고
잃지 않고 얻으려 하기에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분열된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얻기 위해 버려야 하고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썩어야 합니다.
썩어버릴 이 세상과 썩어버릴 이 육신
그러나 영원한 생명과 많은 결실을 내게 하는 소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