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일 주님 부활 대축일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히 내리시길 빕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며 존재의 의미입니다.
부활이란 일반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생이나 환생과는 다릅니다.
따라서 부활이란 완전히 죽은 사람이 신비로운 몸으로 살아나 다시는 죽지 않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주님은 참 하느님이시라는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사도바오로의 말 처럼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은 덧없고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주님 부활은 우리 또한 ‘환골탈태’ 하는 삶을 살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 부활의 이면에는 죽음과 고통이 따릅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아브락사스(abraxas)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라삭스이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라삭스이다”
이 글의 뜻은 땅에 있는 알이 하늘을 나는 새가 되려면
알의 껍질을 깨뜨려야 하는 고통이 수반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이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자신의 에고를 죽이고 일상에서 만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을 원하는 것,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과 직면하는 것과 죽음의 전투에서 기뻐하는 것은
애덕의 완전한 행위임’을 성 보나벤뚜라는 얘기합니다.
많은 성인성녀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은 성인에 따라 5년, 10년, 15년이란 세월속에서
어떤분은 육체적 고통, 어떤 분은 정신적 또는 신앙의 어두움속에서
정화시켜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성인들의 성덕 뒤에는 혹독한 시련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을 닮는 완덕의 과정은 내적,외적으로 언제나 고통스럽고,
희생을 거친 순화와 정화를 통하여 획득됩니다.
그리스도의 진리의 정신 그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내면적으로 매일 자기에 대하여 죽어야만 합니다.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갈 때 그것이 우리를 내적으로 활기 있게 하고
영혼의 상심과 옹졸을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과 건강과 삶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모든 순간을 의식적으로 살고 삶의 가치있는 선물이 무엇인지를 알며
매일 부활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다시 한번 주님부활을 축하드리며 일상안에서 작고 소중한 부활체험을 누리시길 빕니다.
고 도미니코 ofm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갈 때" 이 용기가 저에게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