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오지 않으신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이 떠나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곧 우리에게 이롭다고 하시는데 그렇다면
이 말을 뒤집으면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해롭다는 뜻이겠습니까?
그럴 리는 없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니 당신이 떠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뜻일 텐데 육화하신 주님은 언제고 떠나서야 하고
떠나셔야 우리에게 보호자가 오시니 그것이 이롭다는 뜻입니다.
우선은 주님께서 떠나시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이롭습니다.
왜냐면 영원히 이 세상에서 우리와 사실 것이 아니라면
우리를 떠나시는 것이 우리에게도 이로운데 그것은
우리를 떠나셔야지 주님께서 아버지께 돌아가시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래야지만 우리가 갈 곳을 마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는 말씀을
하시기 전에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
우리는 이 말씀을 지나치지 말아야 하지요.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시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우리를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돌아가시겠다는 것인데
주님께서는 분명한 미래 지향을 가지고 계심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심도 우리를 아버지께 데려가기 위해 오신 것이며
지금 우리를 떠나심도 우리를 아버지께 데려가기 위해서 떠나시는 거지요.
주님은 그러하신데 그런데 제자들이나 우리는 이런 지향이 없거나
이런 지향을 가졌다가도 자주 잃거나 놓치곤 하여 주님께서는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고 질책을 하십니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그러면 우리는 왜 미래 지향이 없습니까?
주님 가신 곳이 당연히 우리의 미래 지향이 돼야하는데 왜 없습니까?
그것은 우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떠날 생각이 없는 우리에게 주님마저 이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 계속 계신다면 우리는 아버지께로 가려는 미래 지향을 더더욱
갖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에 주님이 우리를 떠나는 것이 우리에게 이롭지요.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는데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저의 어머니가 저를 떠났다고 한동안 생각을 했는데
저를 떠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 자식들보다
먼저 가신 거라고 생각을 고쳐먹을 수 있었고 그래서
어머니가 저를 떠난 것이 이런 미래지향을 갖는데 도움이 됐지요.
다음으로 우리는 주님이 떠나셔야 할 더 중요한 이유를 보겠는데
그것은 당신이 말씀하신대로 당신이 떠나셔야 성령께서 오시기 때문이고
성령께서 우리 보호자가 돼주셔야 우리 신앙이 더 성숙케 되기 때문입니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자녀에게 더 유익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리고
부모가 쫓아다니며 자녀를 보호해주는 것보다
자녀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호신술이나
처세술로 무장케 하는 것이 더 나은 보호방식이듯이
성령으로 무장케 되는 것, 다른 말로 바꿔 얘기하면
정신무장을 하는 것이 더 나은 보호방식입니다.
실제로 들은 얘긴데 옛날 공비가 쳐들어왔을 때 월남전 참전용사들이 보니
겁쟁이 신병들이 참호에 숨어 총구를 위로 향하여 총을 쏘더랍니다. 사실
아무리 신무기로 무장하여도 정신무장이 되어있지 않으면 소용없는 거지요.
성령께서는 우리를 주님의 정신으로 무장케 하십니다.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정신/영(Spirit of the Lord)을
육의 정신/영(spirit of the flesh)과 비교하며
육의 정신을 몰아내고 주님의 정신으로 무장하라고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오늘입니다.
찬미 받으소서!!
보내주시는 빠라끌리또 성령의 이끌림에 오늘 저를 맡기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