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 스프 (La Soupe :1902)
작 가 : 파블로 피카소 (1881- 1973)
크 기 : 캠퍼스 유채 38.5 X 46cm
소재지 : 카나다 토론토 (Toronto) 미술관
파블로 피카소는 성공한 화가의 대명사처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많은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91년의 장수를 누리면서 8번 결혼을 하고 여러 분야에서 5만 여점을 작품을 남긴 한마디로 대단한 수작의 작품을 다작으로 남긴 작가였다.
미술 교사를 하던 아버지를 둔 덕분에 일찍 그의 자질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시대의 변천을 겪으면서 더 성숙하고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제작했다.
초기 젊은 시절 가난의 어려움을 체험하면서 그의 슬프고 비감한 심정을 반영하듯 푸른색 위주의 작품을 남겨 청색시대를 시작했고 몇 년이 지나 살기가 나아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자, 밝고 붉은빛 색조의 작품으로 장미 시대라는 새로운 작품기를 열면서 청색 시대와 전혀 다른 작품을 시작하게 된다.
이처럼 그는 하나의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고 평생 동안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해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도자기, 판화 작품 역시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스페인 사람의 대종이 그렇듯 가톨릭 신자로 태어났기에 15세 때 “첫영성체” 라는 작품을 남겼으나, 나이가 들면서 무신론자에서 공산주의자가 되어 일생을 살았다.
가톨릭이 국교인 스페인에서 교회의 위상은 대단한 기득세력으로 시대 징표를 전혀 무시한 경직된 교리를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으로 일관되었기에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겐 실망의 원천이었다.
이런 현실에서 대단한 창의성을 지닌 그가 교리와 제도로 무장된 경직된 교회를 떠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며 복음이 강조하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 보다는 교회라는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차원에서 기득권자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교회의 모습은 그에게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런 실망에서 자연스럽게 무신론자가 되었고 그럴듯한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실천적으로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공산주의야 말로 그에게 이상과 실천과 맞아떨어지는 생활 방식이 되었다.
이런 그에게 있어 교회의 존재성은 하느님의 무덤에 불과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인간성을 발견하면서, 하느님이 존재한다고 외치면서도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이비 유신론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존재성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도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떤 관점에서 복음적 이상을 실재로 살아가는 무신론자의 삶을 살았다.
그는 일생을 통해 기득권자들과 손잡기 위해서 교회가 침묵하는 순간에도 불의한 것들에 대한 강한 분노와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변호에 앞장서서 공의회 문헌에서 언급되고 있는 익명의 크리스챤의 모습을 보였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실한 가톨릭 신자 행세를 하던 독재자 프랑코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손잡고 독일이 새로 발명한 살상 무기의 실험 장소로 스페인 소수 민족이 사는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라는 촌락을 폭격해서 많은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것을 고발한 그의 유명한 작품 “게르니카(Gernica)”는 오늘도 반전운동의 심볼 마크처럼 온 세계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져있다.
심지어 자기가 겪지도 않았던 육이오 한국 전쟁에서 있었던 학살사건(Massacre in Korea)을 고발하는 작품도 남길 만큼 그는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한 대단한 동정심과 억압하는 독재자에 대한 준엄한 고발을 아끼지 않았다.
역사의 많은 순간에 교회가 저지른 잘못의 대종이 바로 복음에 대한 배신과 약하고 가난한 사람을 괴롭히는 전쟁광과 기득권자들을 고발해야 할 순간에 보인 침묵이었다면 피카소는 무신론자가 되어서도 일생 동안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권익옹호를 강조한 복음적 가르침과 자기 삶을 일치시키며 살았다.
오늘날 교회가 외치는 복음이 현대인들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가 작품을 통해 표현한 것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은 교회가 자기 모습을 돌아보는데 좋은 교훈과 반성점을 주고 있다.
이 작품은 그의 인생 초기에 겪었던 청색 시대 작품이며 그는 작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사회의 밑바닥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는 가난과 불운 속에서도 순수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애환에 깊이 동참했으며 이것은 그의 일생을 관통했던 작품 주제였다.
이 시대 그는 하층민들의 비참한 생활과 슬픔, 교도소에서 살고 있는 죄인들, 알콜 중독자의 고독감이나 비애감을 작품의 주요 주제로 표현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울분의 표현이 아니라 이들의 아픔에 동참하려는 연대성의 표현이었다.
작가로서 초기였던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가난하고 궁색한 처지에서 여러 불운한 계층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이들의 삶을 불운한 처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삶에 숨어 있는 상징성과 깊은 철학을 발견하여 이것을 인간사회가 쉽게 평가하는 불운의 상태로 처리한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가치에로 눈길을 돌릴 수 있도록 인도했다
많은 그리스도교 인들 심지어 성직자들도 가난하고 상처받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입으로 외치고 있으나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은데, 작가는 무신론자를 자처하면서도 인간애의 표현에 대해선 거침이 없었다.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카사게마스가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권총 자살로서 인생을 마무리 하는 것을 보면서 친구로서 그를 도우지 못했다는 데 대해 큰 자책감을 느꼈고 이 아픔을 표현하기 위한 색깔을 찾기 시작해서 청색의 시대를 열었다.
파란색과 회색, 청록색 톤으로 죄수, 늙은 작부, 거지, 부랑아, 알코올 중독자 등 어둡고 불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그렸다.
이 작품은 작가로서의 큰 꿈을 꾸며 고향인 바르셀로나와 그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파리를 넘나들 시기 겪었던 삶의 체험에서 시작되었다.
어느날 그는 프랑스의 생 나자르라는 여자 교도소를 방문하면서 특별한 감동을 받게 되었다.
당시 이 교도소에는 여자 죄수가 자기 아이들 동반하여 형기를 치를 수 있는 특별한 장소였는데, 가난한 사람의 삶에 대한 예민한 정서를 지닌 그에게 이 교도소에서 발견한 모녀의 모습이 충격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어린 딸을 데리고 감옥에서 수인생활을 하고 있는 여죄수의 모습이다. 자기 어린 딸에게 주기 위해 식당에서 얻은 한 그릇의 스프를 들고 있는 죄수 어머니를 향해 어린 딸이 뛰어오고 있다.
이 소녀는 자기 인생의 전부와 같은 어머니와 자기의 주린 배를 채워줄 스프가 인생의 전부와 같기에 더 없이 생기 있는 모습으로 어머니를 향해 뛰어가고 있다.
이 소녀에게 스프를 들고 있는 어머니는 자기 삶의 전부이며, 자기에게 있어선 하느님의 존재와 같다.
자신을 더 없이 사랑하는 어머니가 자신의 굶주린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음식을 들고 오는 것은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움이 없으라.”(시편 23편) 의 현실적 재현의 순간이다.
교도소의 삶에 지친 얼굴의 어머니와 교도소 식당에서 준비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죽 한 그릇이 이 소녀에게는 더 바랄 것이 없는 행복의 상징이다.
딸의 더 없이 밝은 모습과 달리 죄수인 어머니의 표정은 더 없이 어둡다. 교도소에 살아야 할 만큼 불운하고 죄를 지어 형벌을 받고 있는 모습은 작가가 심취했던 가난하고 고독한 슬픈 인간의 모델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모든 것이 다 차단되고 제약을 받아 저주받은 것 같은 수인생활 속에서도 사랑하는 딸에게 줄 죽 한 그릇을 배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가 충분히 있으며, 이런 것의 반복을 통해 자기 삶의 또 다른 분신인 딸이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에 삶의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의 비참한 처지가 청색이 주제인 작품의 성격을 잘 표현하는 것이라면 죽 그릇을 들고 있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이 어린 딸은 자신의 더 없이 희열의 느끼며 자신은 삶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희망의 모습이다.
이 작품은 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이며 조용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진정한 의미성을 발견하게 만드는 한편의 감동적인 작품이다.
여인이 들고 있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죽 그릇이야말로 이 여인과 어린 딸을 연결시키는 접착제와 같다.
성경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가난의 실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 3)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루카 6: 20)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많은 사업을 일으켰으며 오늘도 계속하고 있으나, 역사 속에서 교회가 저지른 가장 안타까운 잘못이라면 이 정신의 실천 보다 가난의 설명에 더 신경을 쓰면서 결과론적으로 예수의 가난을 증거 하는데는 불구자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 피카소는 성공한 예술가였기에 자신이 가난하게 살았다고 할 수 없지만 성서가 말하는 가난한 사람의 고귀함과 행복의 실상을 발견했기에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그들의 비참한 처지를 덜어주기 위해 고발하며 살았다는 면에서 교회의 태도와 또 다른 가난의 영성을 증거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감옥에서 만난 죄수 여인과 어린 딸 사이에 죽 한 그릇으로 어우러지는 정겨운 모습은 어떤 달변의 성직자가 준비한 강론 못지않게 우리들에게 복음적 감동으로 가슴을 울리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갈수록 썰렁해지는 교회가 복음에 감동되어 몰려드는 신자들로서 가득 채울 수 있기 위해선 작가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복음적 실천의 계기를 만드는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작가가 생전에 남긴 이 말은 참으로 오늘 교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나는 예술이 슬픔과 고통에서 싹트게 된다고 생각한다.”
어디 예술뿐이겠는가? 크리스챤의 삶 역시 교회가 실천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심원한 배려와 비례하게 마련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이 말을 너무도 정확하면서도 심원하게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