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 기적을 많이 일으키신 코라진과 벳사이다가
불행하다고 하시는데 그 이유가 그 많은 기적에도
회개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지만 대뜸 이런 생각들이 듭니다.
기적만으로는 불가능한 회개.
기적으로도 불가능한 회개.
기적자체로는 불가능한 회개.
기적이 하느님의 표징이라면 회개가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어찌 주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셨는데도 회개가 안 이루어진 겁니까?
그것은 기적이 하느님의 표징이어야 회개가 이루어지는데
코라진과 벳사이다에게는 기적이 하느님의 표징이 아니었던 거지요.
우리 가운데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표징으로서 기적 체험을 많이 하는 사람과
어떤 기적도 하느님의 표징이 아니고 그래서 기적체험이 없는 사람.
오래 전에 북한 선교 후원회원들과 통일동산에서 함께 야외행사를 했습니다.
5 월인 걸로 기억되고 마르고 맑은 하늘이었는데 무지개가 뜬 것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적이라고 얘기하고 사진을 연신 찍었습니다.
속으로는 은근히 내가 드리는 미사 때 무지개가 뜨고
후원들은 기적이라고 하니 이것은 내게는 나쁠 것 없다.
내가 하는 일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는 표징을
하느님께서 이렇게 보여주시는 거라고 회원들은 믿을 테니.
그러면서도 저는 그것이 기적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기적에 목매고 싶지 않고 또 목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이런 이적異蹟이 없어도
언제나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나의 일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랄까 믿음이 저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틀린 생각이 아니지만 교만한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기적으로 치부하려는 기적중독자와
나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기적중독자라는 표현을 제가 썼는데
안 좋게 표현한 것이고 폄하한 것이며 이것이 제 교만이지요.
기적을 그렇게 밥 먹듯 체험하였으면 회개를 했어야지
회개는 없고 기적타령만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겁니다.
그런데 회개가 없기는 저도 마찬가지고,
하느님 현존체험의 가능성마저 닫아버렸으니 제가 더 나쁘고 더 문제지요.
앞에서 기적중독자가 밥 먹듯 체험을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치면 저는 입 다물고 아예 밥을 먹지 않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제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아예 막는 겁니다.
저의 주장처럼 이적이 없어도 하느님 현존을 언제나 느낀다면 좋지만
교만 때문에 하느님 현존체험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으면서
이런 교만한 주장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겸손이 없으면 하느님께서는 아예 기적의 씨를 뿌리실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하느님의 기적이 회개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깊이 성찰하라는 오늘 하루가 열렸습니다.
으로 하루를 꺼내 씁니다.
밥푸러 가는 오늘은 더 행복합니다.ㅎ
신부님! 날씨가 넘 더워요.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