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성경의 모든 말씀에 오류는 없을까?
복음에서 얘기하는 것들이 모두 사실일까?
사건의 진실 차원에서 성경에 오류가 없다고 교회가 주장한다면
제가 아무리 사제라고 해도 그 주장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가르침에 오류는 없지만 사실에 오류는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오늘 얘기가 사실이라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자기의 맹세와 체면 때문에 요한을 죽였다는 것이나
여자들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죽였다는 것이나
다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얘기이지요.
그리고 제 생각에 복음에서조차도 당시 사회나 교회의 편견이 작용하여
요한의 죽음을 여자들에게 덮어씌우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 교회 안에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 비하적인 면이 분명 있고,
그래서 요즘 일부 여성주의자들이 성체모독이나 태아 살해 옹호와 같이
비록 방식이 과격하고 비이성적이긴 하지만 우리 교회를 공격하는 겁니다.
사실 약자에게 뒤집어씌운다는 면에서 우리 교회도 비겁합니다.
두려움과 존경 때문에 요한을 죽일 마음이 없는 마르코복음과 달리
마태오복음의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군중이 요한을 존경하기에 죽이지 못하다가
요망한 계집 헤로디아의 간교함 때문에 죽이는 것으로 묘사하는데
책임이랄까 탓을 여자에게 돌리는 것이
하와에게 탓을 돌리는 아담과 같습니다.
사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요한을 정적으로 생각하여
사람들이 요한을 더 많이 따르기 전에 죽인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제가 볼 때 이것이 사실 면에서는 더 신빙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은 왜 헤로디아 때문에 죽인 거로 얘기할까요?
역사적인 사실을 몰랐기 때문일까요?
그 이유를 제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이런 것이 아닐까 추측은 해봅니다.
공동범죄의 심리 말입니다.
혼자서 저지르지 못할 범죄도 공범이 있으면 지지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빨간 불에 길을 건너는 것도 혼자는 주저하지만
누구 하나 더 있으면 주저함 없이 건너고 여럿이면 자신 있게 건너지요.
아이들의 집단 괴롭힘이나 폭력도 이런 공동범죄의 심리로 행사하기에
어른들도 경악할 정도로 잔인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 겁니다.
가담자의 숫자만큼 죄책감이 줄어들고 벌의 두려움이 줄어드는 거지요.
복음은 우리 죄의 이런 측면도 얘기하고자 한 것이지
꼭 여자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한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이런 심리의 비열함을 직시하고
죄에 대한 책임감과 자신의 책임에 대한 주체적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죄책감이 너무 크고 자책이 너무 심하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죄책감과 자책이 너무 큰 것이 나쁜 것이 아니며,
회개와 은총체험 없이 오로지 죄책감과 자책만 있는 것이 나쁜 것이지
죄책감과 자책이 큰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휩쓸려서 죄를 짓지 말고 홀로
죄와 악에 대한 책임을 질 생각을 해야 하고
죄를 가지고 홀로 하느님께 나아가고 혼자 하느님 앞에 서야지
같이 죄를 가지고 가 이제 어쩔 거냐고 감히 대들지 말아야 합니다.
상과 칭찬은 혼자 받으려 하고 벌과 비난은 남에게 미루거나
남과 같이 받으려는 비열함이 내게 있지 않은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공동범죄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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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사라지기를 바라지 말고 두고두고 미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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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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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를 달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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