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관복음인데도 오늘 루카복음의 베드로 부르심 얘기는
다른 두 복음의 부르심 얘기와 다르다는 것을 다 아시지요?
그리고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성의 없이 부르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물론 이것은 주님께서 성의 없이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 부르심의 절대성과 우리 응답의 즉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부러 앞뒤 얘기를 생략한 것인 반면에 오늘 루카복음은
이방인들에게 부르심과 응답의 얘기를 이해시키기 위해
주님께서 매우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시고
부르시는 데에 공을 들이시는 것으로 기술하는 것임을 압니다.
그래서 제 나름의 해석이지만 루카복음의 주님께서는
꽤나 치밀하게 작전을 세우시고, 공들여 작업을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부르심을 <주님의 작전과 작업>이라고 명했습니다.
우선 주님께서는 베드로와 첫 제자들을 부르시기 위해
베드로의 장모의 집으로 몸소 가시고 열병을 고쳐주시고,
악령들을 쫓아내는 기적을 행하시고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게 하십니다.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는 얘기가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서는
베드로의 부르심 받는 얘기 뒤에 나오는데 루카복음에서는
부르심 받는 얘기 앞에 나오는 것이 바로 이런 의도 때문이지요.
아무튼 베드로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게
반쯤 작업을 하신 주님께서는 이제 나머지 작업을 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 베드로는
전날 밤샘 고기잡이가 허탕이었는데도 주님께서 다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실 때 ‘스승님’이라고 높여 부르며
예수님이 하라하시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 합니다.
그러니까 고기잡이 선수인 베드로가 허탕을 치게 된 것도
주님의 작업의 하나이고 고기를 잡게 하신 것도 주님의 작업인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애를 있는 대로 썼는데도 허사 되었을 때
내가 능력이 없어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나의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 실패와 허사됨을 인간인 나의 탓으로만 생각하는데
그런데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 나의 탓도 아니고 인간 너의 탓도 아니며,
그렇다고 하느님의 탓도 아닌 하느님의 덕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내가 애써 한 것이 허사된 것이 하느님 탓이라고 생각해도
그것으로 하느님 체험이 시작되는데 하느님 탓이 아니라
덕이라고까지 생각되면 그때 하느님 체험은 완전해집니다.
지금까지 내 잘나 잘 산 줄 알거나 내 못나 못 사는 줄 알았는데
성공과 실패가 내 잘난 것도, 내 못난 것도 아닌 하느님 덕이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이로 인해 우리 인간이 처음에는
애쓴 보람이 없는 것 때문에 인생이 허망함을 느끼게 되고,
다음으로 내가 잘못 알고 살아온 것 때문에 죄인임을 느끼게 되며
마지막으로 하느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깨닫게 되면서
우리는 오늘 베드로처럼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하느님의 작전과 작업이 늘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만 자기가 애써 한 것이 허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도 그렇게 치밀하게 작전을 짜고 애써 작업을 했는데도
우리 인간이 오늘 베드로처럼 떠나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주님의 그 수많은 부르심을 수시로 허사로 만들고,
허다하게 허사로 만드는 나는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