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버지 다윗에 이어 임금이 된 솔로몬은
하느님께 소원을 아룁니다.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당신 종을
제 아버지 다윗을 이어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만,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에 하느님께서는
부와 권력과 같은 다른 것을 자기를 위해 청하지 않고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고 답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솔로몬은 지혜로운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지혜를 청하면서 명석한 머리를 달라 하지 않고
듣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Heart to understand)을 달라고 하고
하느님께서도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지혜는 머리의 능력이 아니라 마음의 능력이라는 표시입니다.
머리를 어떻게 잘 굴리느냐가 아니라
마음을 어떻게 잘 쓰느냐가 관건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마음을 어떻게 쓰는 것이 지혜로운 것일까요?
듣는 마음과 지혜롭게 분별하는 마음을 청하는 솔로몬에게
하느님은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장수를 청하지 않았다고 칭찬하십니다.
즉, 칭찬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기를 위해 청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에서의 부와 장수를 청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우리가 청하는 것과 정반대입니다.
첫째로 보통의 우리는 나를 위해 무엇을 달라고 청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의 우리는 小市民이고 이기주의적입니다.
그러나 크게 쓰이는 큰 인물은 자기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자기를 포함한 모두를 위해 기도합니다.
원불교의 가르침 중에 大空大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를 크게 비우는 사람이 사회 公益에 크게 이바지 한다는 뜻이지요.
자기를 비우는 사람이 弘益人間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행복할 때 자기도 행복한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불행한데 자기만 행복하려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자신의 행복을 느끼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람과 사랑을 잃어버리기에
결국 불행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내가 행복하려면 다른 사람을 나의 행복에 초대해야 하고,
그래서 현명한 솔로몬처럼 듣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자기의 고통과 문제만 가지고 동동거리는 옹색한 마음보다
다른 이의 아픔과 하소연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야말로
남의 행복으로 행복해지는 참으로 지혜로운 자의 행복한 마음입니다.
두 번째로 보통의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와 장수를 청합니다.
요즘 말로 하며 Well-being을 원하는 것입니다.
Wellbeing은 참으로 좋은 말이고 그래야 되지만 문제는 그 내용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장수하는 것이 Wellbeing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부와 건강에 대해서 집착한다면 Mal(bad)-being이 될 것이고
그 인생은 불행해질 것입니다.
더 많이 벌려다 재산을 다 날리고
건강에 대해 너무 걱정하느라 건강을 상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가치가 전도되어서는 안 되고
우선순위가 바뀌어서도 안 됩니다.
이 세상 행복을 위해서
돈이 건강보다 앞서서는 안 되고
돈이 사람보다 앞서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돈이 중요하다 하여 건강 상할 정도로 집착한다면
이 얼마나 바보짓입니까?
돈이 중요하다 하여 사람을 다 잃으면
이 얼마나 바보짓입니까?
더 나아가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이 세상 것이 하느님 나라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더 가치 있는 것과 덜 가치 있는 것을 분별할 수 있고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덜 가치 있는 것을 팔아버릴 수 있는 마음이
오늘 솔로몬이 청하는 지혜로운 마음이고
오늘 복음이 얘기하는 하느님 나라의 지혜입니다.
하느님께 소원을 아룁니다.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당신 종을
제 아버지 다윗을 이어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만,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에 하느님께서는
부와 권력과 같은 다른 것을 자기를 위해 청하지 않고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고 답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솔로몬은 지혜로운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지혜를 청하면서 명석한 머리를 달라 하지 않고
듣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Heart to understand)을 달라고 하고
하느님께서도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지혜는 머리의 능력이 아니라 마음의 능력이라는 표시입니다.
머리를 어떻게 잘 굴리느냐가 아니라
마음을 어떻게 잘 쓰느냐가 관건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마음을 어떻게 쓰는 것이 지혜로운 것일까요?
듣는 마음과 지혜롭게 분별하는 마음을 청하는 솔로몬에게
하느님은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장수를 청하지 않았다고 칭찬하십니다.
즉, 칭찬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기를 위해 청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에서의 부와 장수를 청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우리가 청하는 것과 정반대입니다.
첫째로 보통의 우리는 나를 위해 무엇을 달라고 청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의 우리는 小市民이고 이기주의적입니다.
그러나 크게 쓰이는 큰 인물은 자기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자기를 포함한 모두를 위해 기도합니다.
원불교의 가르침 중에 大空大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를 크게 비우는 사람이 사회 公益에 크게 이바지 한다는 뜻이지요.
자기를 비우는 사람이 弘益人間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행복할 때 자기도 행복한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불행한데 자기만 행복하려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자신의 행복을 느끼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람과 사랑을 잃어버리기에
결국 불행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내가 행복하려면 다른 사람을 나의 행복에 초대해야 하고,
그래서 현명한 솔로몬처럼 듣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자기의 고통과 문제만 가지고 동동거리는 옹색한 마음보다
다른 이의 아픔과 하소연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야말로
남의 행복으로 행복해지는 참으로 지혜로운 자의 행복한 마음입니다.
두 번째로 보통의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와 장수를 청합니다.
요즘 말로 하며 Well-being을 원하는 것입니다.
Wellbeing은 참으로 좋은 말이고 그래야 되지만 문제는 그 내용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장수하는 것이 Wellbeing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부와 건강에 대해서 집착한다면 Mal(bad)-being이 될 것이고
그 인생은 불행해질 것입니다.
더 많이 벌려다 재산을 다 날리고
건강에 대해 너무 걱정하느라 건강을 상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가치가 전도되어서는 안 되고
우선순위가 바뀌어서도 안 됩니다.
이 세상 행복을 위해서
돈이 건강보다 앞서서는 안 되고
돈이 사람보다 앞서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돈이 중요하다 하여 건강 상할 정도로 집착한다면
이 얼마나 바보짓입니까?
돈이 중요하다 하여 사람을 다 잃으면
이 얼마나 바보짓입니까?
더 나아가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이 세상 것이 하느님 나라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더 가치 있는 것과 덜 가치 있는 것을 분별할 수 있고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덜 가치 있는 것을 팔아버릴 수 있는 마음이
오늘 솔로몬이 청하는 지혜로운 마음이고
오늘 복음이 얘기하는 하느님 나라의 지혜입니다.
주님께서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마라"
-주님께서 해 주신 일, 그 사랑을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이 세상 것이 하느님 나라보다 앞서는 일은 없겠지요.-
신부님 ! 항상 고맙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나" 가 아니고 "너" 로 살아 가겠습니다.
이 세상 것이
하느님 나라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