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옛날에 많은 신학자들이 우리 신앙의 문제점으로
기복신앙을 많이 비판했습니다.
기복신앙祈福信仰이란 복을 구하는 신앙이지요.
그런데 복을 구하는 것이 뭐가 문제입니까?
우리가 다 행복하려고 신앙생활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사람들 다 행복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우리 신앙인은 그 행복을 다른 데서 예를 들어
어떤 인간이나 악령에게서 찾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찾고
하느님에게서 그 행복을 얻으니 얼마나 훌륭합니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하느님에게서 찾지 않고
인간이나 세상에서 찾기에 문제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복을 구하는 신앙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복을 구하는 신앙이고 기도냐가 문제지요.
그렇다면 어떤 복을 구하는 것이 문제입니까?
이 세상의 행복을 구하는 것이 문제인가요?
이 세상의 행복을 구하면 그것이 문제일까요?
이 세상에서 행복하면 안 되고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 행복을 구하지 않기를 바라실까요?
그렇다면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는
오늘 주님 말씀은 이 세상 행복에는 해당되지 않는 걸까요?
제 생각에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한 것을 시샘치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기를 바라실 것이고
다만 잘못되고 거짓된 행복을 구할까 걱정하실 겁니다.
그러면 잘못된 행복은 무엇이고 참 행복은 무엇입니까?
남을 불행케 하며 자기만 행복한 행복,
이 세상 행복으로 끝장이 나는 행복,
참 행복을 가리거나 대리 만족케 하는 행복이 잘못되고 거짓된 행복입니다.
그러기에 돈을 주십사고 청하되 돈만 청하지 말고 사랑도 청하고,
사랑을 청하되 받으려는 사랑만 청하지 말고 주는 사랑도 청하며,
만족을 청하되 말초적인 만족만 청하지 말고 영적인 만족도 청하고,
오늘 주님께서 맨 끝에 지나가듯 언급하신 성령을 청할 것입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저는 오늘 복음 말씀 때문에 다른 분들을 위한 청원기도 때는
치유의 은총을 주소서, 위로를 그에게 주소서, 힘을 주소서 등의
청원기도를 하지만 저를 위한 청원기도 때는
저에게 자비를 베푸시라는, 성령을 주시라는 기도만 했었습니다.
자비를 베푸시라는 것은 죄인이기에 자비를 청한 것이고,
성령을 청한 것은 성령이야말로 오늘 주님 말씀대로
가장 좋은 것이고 완전한 만족이기 때문입니다.
교만일 수도 있고 고차원적인 탐욕일 수도 있지만
‘청할 거면 성령을 청해야지 하찮은 돈이나 명예를 청해서 되겠는가?’
하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저의 생각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자랑이 아니라 제게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성령이고, 그것을 청합니다. 오늘.
감사합니다. 주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