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에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갖가지 물건들을 내놓고 팔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내놓은 물건들이라고 하는 것은
죄를 속죄하기 위해 필요한 봉헌 제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를 속죄하기 위한
봉헌 제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다 뒤엎으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뒤엎으신것들은
환전상들의 돈과 속죄 제물에 사용되는
갖가지 동물들이 아니라 하느님을 경외하고
예배드리기보다 앞서 제물들을 이용해
이익을 얻고 돈을 벌고자 했던 그들의
세속적이면서도 재물에 대한 욕심과
탐욕이었습니다.
그들이 성전에서 속죄 제물에 필요한
갖가지 짐승들을 팔았던 행위는
전혀 잘못된 행위들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속죄제물을 바치는
행위는 당연이 정당했고 그들이 성전에서
팔았던 행위는 잘못된 점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을 알고 계셨던
유다인이셨기에 그 점에 대해서 모르고
계실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성전에서
사고 파는 행위가 잘못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뒤엎으신
이유는 성전에서 하느님을 경외하고 진심으로
예배하는 마음이 있기보다 앞서 재물을
사고 팔아서 세속적인 이익과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뒤엎으신것은
환전상들의 돈과 짐승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팔아서 얻고자 했던 그들의 탐욕과 욕심,
세속적인 이익이었었고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분노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도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성령께서 거처하시는 성전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에 정당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직장인으로서의 의무,
가정생활의 의무, 신앙인으로서의 의무,
그리고 사제로서의 의무, 수도자로서의 의무.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지키고 살아가면서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의무들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 어떤
누가 봐도 잘못된 점은 없고 정당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이용해 세속적인 탐욕과 세상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으로
부터 정화되어야 하는 성전이 될 것입니다.
높은 신학적 지식을 쌓은 사람은
누가 보기에도 훌륭하고 정당하지만
그것들을 통해서 자신을 높이고 남들로 부터
환영을 받기를 원하고 자신의 자랑으로
삼고자 한다면 반듯이 정화되어야할 성전이
됩니다. 어떠한 수도자가 늘 기도와 묵상속에
서 살아가고 경건하게 살아간다면 그 누가봐도
훌륭하고 정당하지만 그것들을 통해서
자신을 높이거나 자만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는 이들을 비판한다면 반듯이 정화되어야
할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열심한 신자가
매일 미사에 나오고 묵주기도 거르지 않고
바치고 성경 매일 묵상하고 봉사활동도
빠지지 않고 한다면 당연이 그 누가 봐도
훌륭하고 흠잡힐때가 없겠지만 그것들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정당화 시키며
그렇게 하지 못해 보이는 이들을 비판하고
자신의 정당함을 드러내며, 스스로 자만해
진다면 이 역시 반듯이 정화되어야 할
성전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신앙생활도 사회생활에서도
그 어떤 누가 봐도 잘못된 것이 전혀 없는
정당한 행위에서도 그것을 통해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이익을 탐한다면
우리의 성전,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우리 마음의 성전을 향해 꾸짖으실 것입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지금 우리의 성전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성전은 정화되어야 할 성전입니까?
아니면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있는 성전입니까?
오늘 하루만이라도 우리의 성전을 되돌아 보고
살펴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에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갖가지 물건들을 내놓고 팔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내놓은 물건들이라고 하는 것은
죄를 속죄하기 위해 필요한 봉헌 제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를 속죄하기 위한
봉헌 제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다 뒤엎으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뒤엎으신것들은
환전상들의 돈과 속죄 제물에 사용되는
갖가지 동물들이 아니라 하느님을 경외하고
예배드리기보다 앞서 제물들을 이용해
이익을 얻고 돈을 벌고자 했던 그들의
세속적이면서도 재물에 대한 욕심과
탐욕이었습니다.
그들이 성전에서 속죄 제물에 필요한
갖가지 짐승들을 팔았던 행위는
전혀 잘못된 행위들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속죄제물을 바치는
행위는 당연이 정당했고 그들이 성전에서
팔았던 행위는 잘못된 점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을 알고 계셨던
유다인이셨기에 그 점에 대해서 모르고
계실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성전에서
사고 파는 행위가 잘못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뒤엎으신
이유는 성전에서 하느님을 경외하고 진심으로
예배하는 마음이 있기보다 앞서 재물을
사고 팔아서 세속적인 이익과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뒤엎으신것은
환전상들의 돈과 짐승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팔아서 얻고자 했던 그들의 탐욕과 욕심,
세속적인 이익이었었고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분노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도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성령께서 거처하시는 성전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에 정당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직장인으로서의 의무,
가정생활의 의무, 신앙인으로서의 의무,
그리고 사제로서의 의무, 수도자로서의 의무.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지키고 살아가면서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의무들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 어떤
누가 봐도 잘못된 점은 없고 정당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이용해 세속적인 탐욕과 세상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으로
부터 정화되어야 하는 성전이 될 것입니다.
높은 신학적 지식을 쌓은 사람은
누가 보기에도 훌륭하고 정당하지만
그것들을 통해서 자신을 높이고 남들로 부터
환영을 받기를 원하고 자신의 자랑으로
삼고자 한다면 반듯이 정화되어야할 성전이
됩니다. 어떠한 수도자가 늘 기도와 묵상속에
서 살아가고 경건하게 살아간다면 그 누가봐도
훌륭하고 정당하지만 그것들을 통해서
자신을 높이거나 자만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는 이들을 비판한다면 반듯이 정화되어야
할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열심한 신자가
매일 미사에 나오고 묵주기도 거르지 않고
바치고 성경 매일 묵상하고 봉사활동도
빠지지 않고 한다면 당연이 그 누가 봐도
훌륭하고 흠잡힐때가 없겠지만 그것들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정당화 시키며
그렇게 하지 못해 보이는 이들을 비판하고
자신의 정당함을 드러내며, 스스로 자만해
진다면 이 역시 반듯이 정화되어야 할
성전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신앙생활도 사회생활에서도
그 어떤 누가 봐도 잘못된 것이 전혀 없는
정당한 행위에서도 그것을 통해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이익을 탐한다면
우리의 성전,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우리 마음의 성전을 향해 꾸짖으실 것입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지금 우리의 성전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성전은 정화되어야 할 성전입니까?
아니면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있는 성전입니까?
오늘 하루만이라도 우리의 성전을 되돌아 보고
살펴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