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제가 잠시 본당 신부로 있었던 80년대의 얘깁니다.
제 군대 전우가 서울에서 진주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후임 병이었기에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이지만
그 먼 곳까지 찾아왔으니 기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찾아 온 이유가 기가 막혔습니다.
우주인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왔다는 것입니다.
군 생활 중에 저희 부대에는 저 말고도 개신교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사병생활을 하였고 그 개신교 신학생이 군종 병을 하였는데
그도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저를 찾아오기 전
그 목사님을 찾아가 똑 같은 질문을 하였는데,
그 목사님은 성경에 우주인 얘기가 없으니 없다고 대답을 하였답니다.
이제 천주교 신부는 어떻게 대답하는지 듣고자 온 것입니다.
저는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인 말은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으시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천사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질문을 아주 가끔 받습니다.
그것은 악령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같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사도 악마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저는 믿으며
적어도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으시니
인간이 아닌 어떤 형태의 존재가 있을 수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하느님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며,
제 생각으로는 하느님의 신성을 심히 훼손하는 것입니다.
천사의 존재를 믿지만
천사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는 다른 피조물을
마치 인간을 위해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천사도 다른 피조물들도 인간을 위해 있다고 한다면
구약 성서적이고 서구적인 사고방식에 여전히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 동양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관계이고
인간은 모든 자연 질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생각도 바뀌어야 합니다.
천사들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오가며 어떤 역할을 할지라도
그것을 가지고 인간을 위하여 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피조물을 사랑하고 돌보라는 사명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듯
하느님께서도 천사들에게 관계적 사명을 주신 것일 뿐입니다.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피조물은
서로를 위해주며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이어주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찬가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시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골로 1,16-20)
제가 잠시 본당 신부로 있었던 80년대의 얘깁니다.
제 군대 전우가 서울에서 진주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후임 병이었기에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이지만
그 먼 곳까지 찾아왔으니 기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찾아 온 이유가 기가 막혔습니다.
우주인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왔다는 것입니다.
군 생활 중에 저희 부대에는 저 말고도 개신교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사병생활을 하였고 그 개신교 신학생이 군종 병을 하였는데
그도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저를 찾아오기 전
그 목사님을 찾아가 똑 같은 질문을 하였는데,
그 목사님은 성경에 우주인 얘기가 없으니 없다고 대답을 하였답니다.
이제 천주교 신부는 어떻게 대답하는지 듣고자 온 것입니다.
저는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인 말은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으시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천사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질문을 아주 가끔 받습니다.
그것은 악령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같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사도 악마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저는 믿으며
적어도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으시니
인간이 아닌 어떤 형태의 존재가 있을 수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하느님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며,
제 생각으로는 하느님의 신성을 심히 훼손하는 것입니다.
천사의 존재를 믿지만
천사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는 다른 피조물을
마치 인간을 위해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천사도 다른 피조물들도 인간을 위해 있다고 한다면
구약 성서적이고 서구적인 사고방식에 여전히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 동양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관계이고
인간은 모든 자연 질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생각도 바뀌어야 합니다.
천사들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오가며 어떤 역할을 할지라도
그것을 가지고 인간을 위하여 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피조물을 사랑하고 돌보라는 사명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듯
하느님께서도 천사들에게 관계적 사명을 주신 것일 뿐입니다.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피조물은
서로를 위해주며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이어주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찬가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시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골로 1,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