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
오늘은 준비기도 5일째로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흠숭함'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사실 백화점이나 그밖에 좋은 시설에 가면 사람들이 참으로 친절하게 대해줍니다. 목소리하며 얼굴의 그 미소 등등.
그렇다면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깨끗한 마음일까요?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면
그것은 바로 모세를 통해 계시해 주신 율법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는 말씀도
단순히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믿는 가르침을 숨기지 않고 올곧게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타나엘은 진리를 갈망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율법 아래, 즉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듯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진실된 모습을 보시고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이는 나타나엘의 사랑을 완전에까지 끌어 올리시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더 이상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하신 모세의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고 하신
완전하신 아버지의 사랑을 본받게 하고자함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인준받지 않은 회칙 22장 서두에서
이 완전한 사랑인 “원수사랑”을 다음과 같이 풀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억울하게도 번민과 괴로움,
부끄러움과 모욕,
고통과 학대,
순교와 죽음을 당하게 하는 모든 이들이 우리의 벗들’입니다.
한 마디로 부당함을 받아들임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일상에서 부당함을 당하면 쉽게 옳고 그름을 따집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끝까지 따지며 자신을 굽히지 않는 데는
‘내가 받은 손해를 보상받겠다.’는 마음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보상은 다음의 세 가지로 충족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당사자와 시비를 가려 내가 이김으로써,
둘째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즉 그 사람에 대한 험담, 비판 등으로 동조를 구함으로써,
셋째는 물질적인 것으로,
즉 기분전환을 하며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가짐으로써
자신이 받은 손해를 보상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런 정신으로 무슨 업적을 쌓고
무슨 이익을 본다고 해도 하느님 보시기에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보호자 노릇을 하며
보상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흠숭하는 것은
부당함 앞에서 인내하며, 자신이 스스로 보호자가 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께서 나의 억울함을 해결해주시기를 믿고
그분의 보호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다림은 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내가 정당하면 정당할수록 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자신 안에서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니가 더 옳아.’ 등등의 말이 마음속에서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힘을 빼고 견디며 기다리는 시간이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하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주님을 참으로 흠숭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깨끗한 마음으로 그분을 흠숭한다는 것은
이처럼 하느님을 우리의 보호자로 여기며 도와주시기를 믿기에
진정 그분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고백하는 것이 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끼치는 그것들 때문에 우리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 있던 나타나엘을 부르시어
완전한 사랑에까지 끌어 올리고자 하셨던 것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함이었습니다.
곧 영원한 생명이신 아버지를,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해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됨으로써 아버지를 만나고, 그럼으로써 이런 음성을 듣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네가 어디에 가든지 내가 네 보호자가 되겠고,
영원한 나라에 너를 데려다 주겠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아버지를 볼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흠숭하는 사람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진정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말하듯이 '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아버지를 하늘에 모시는 것은,
오, 얼마나 영광된 일인지!
그분은 우리의 힘이시고 능력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준비기도 5일째로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흠숭함'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사실 백화점이나 그밖에 좋은 시설에 가면 사람들이 참으로 친절하게 대해줍니다. 목소리하며 얼굴의 그 미소 등등.
그렇다면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깨끗한 마음일까요?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면
그것은 바로 모세를 통해 계시해 주신 율법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는 말씀도
단순히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믿는 가르침을 숨기지 않고 올곧게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타나엘은 진리를 갈망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율법 아래, 즉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듯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진실된 모습을 보시고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이는 나타나엘의 사랑을 완전에까지 끌어 올리시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더 이상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하신 모세의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고 하신
완전하신 아버지의 사랑을 본받게 하고자함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인준받지 않은 회칙 22장 서두에서
이 완전한 사랑인 “원수사랑”을 다음과 같이 풀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억울하게도 번민과 괴로움,
부끄러움과 모욕,
고통과 학대,
순교와 죽음을 당하게 하는 모든 이들이 우리의 벗들’입니다.
한 마디로 부당함을 받아들임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일상에서 부당함을 당하면 쉽게 옳고 그름을 따집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끝까지 따지며 자신을 굽히지 않는 데는
‘내가 받은 손해를 보상받겠다.’는 마음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보상은 다음의 세 가지로 충족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당사자와 시비를 가려 내가 이김으로써,
둘째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즉 그 사람에 대한 험담, 비판 등으로 동조를 구함으로써,
셋째는 물질적인 것으로,
즉 기분전환을 하며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가짐으로써
자신이 받은 손해를 보상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런 정신으로 무슨 업적을 쌓고
무슨 이익을 본다고 해도 하느님 보시기에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보호자 노릇을 하며
보상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흠숭하는 것은
부당함 앞에서 인내하며, 자신이 스스로 보호자가 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께서 나의 억울함을 해결해주시기를 믿고
그분의 보호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다림은 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내가 정당하면 정당할수록 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자신 안에서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니가 더 옳아.’ 등등의 말이 마음속에서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힘을 빼고 견디며 기다리는 시간이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하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주님을 참으로 흠숭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깨끗한 마음으로 그분을 흠숭한다는 것은
이처럼 하느님을 우리의 보호자로 여기며 도와주시기를 믿기에
진정 그분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고백하는 것이 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끼치는 그것들 때문에 우리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 있던 나타나엘을 부르시어
완전한 사랑에까지 끌어 올리고자 하셨던 것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함이었습니다.
곧 영원한 생명이신 아버지를,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해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됨으로써 아버지를 만나고, 그럼으로써 이런 음성을 듣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네가 어디에 가든지 내가 네 보호자가 되겠고,
영원한 나라에 너를 데려다 주겠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아버지를 볼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흠숭하는 사람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진정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말하듯이 '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아버지를 하늘에 모시는 것은,
오, 얼마나 영광된 일인지!
그분은 우리의 힘이시고 능력이시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주님을 바라보면 깨끗하게 정화된다고 사부님은 가르치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