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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2019년 1월 27일 연중 제 3주일-터키 에페소 기도의 집

by 고도미니코 posted Jan 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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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은혜로운 해인 희년을 회당에서 선포하십니다. 바로 그 중심은 가난한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희년을 회당에서 선포하는 의미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회당제도는 페르시아 시대 혹은 바빌론 유배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유대 사회에서는 성전과 더불어 종교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회당은 예루살렘 성전을 대신 한다기보다,제사장 또는 레위인이 아닌 식자층 서기관에 의해 주도된 곳으로 기도와 율법을 주로 가르치는 곳이었습니다. 회당은 유대인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었고 잘못을 한 유대인들에게는 형벌도 내릴 수 있는 사법적 기능도 소유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회당에서는 회당장이 저명한 사람을 초청하여 말할 수 있게 하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기회를 통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서 회당에서의 가르침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바오로 역시 전도여행 시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었습니다. 이처럼 회당은 그리스도 역사 초기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중요한 장소에서 주님의 은혜로운 해인 희년을 선포하십니다. 이 희년은 안식년 주기에서 50년이 되는 해를 말합니다. 희년이 되면 제사장들은 그 땅 전역에 수양 뿔의 나팔을 불어 희년이 시작되었음을 알렸습니다. 

희년이 되면 가난으로 팔린 땅이 원 주인에게 돌아가고 종들이 해방되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희년’은 종말론적으로 메시야시대의 도래를 예표하며 희년의 선포는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킬 복음의 전파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유대인들 가운데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쁜 소식을 읽으신 다음, 두루 마리를 덮고는 “오늘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분의 가르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분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고 그들을 가장 먼저 축복하셨습니다. 그분은 오랜 세월 악령에 사로 잡혀 마귀의 노예로 묶여 있던 이들에게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 죄의 사슬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으라고 만민을 부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눈이 망가진 이에게는 볼 수 있는 힘을 주심으로써 눈 먼 이에게 빛을 주시고, 먼 옛 날부터 마음으로 진리에 눈 먼 자들에게는 참 종교의 빛으로 진리를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들은 예언은 그리스도께서 복음의 창시자요, 인도자가 되실 분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이 이 시대에 헐벗고, 굶주리고, 소외받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사랑과 자비로 큰 위안과 희망과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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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풍경소리 2019.01.27 06:42:56
    그렇습니다. 신부님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보내주며..“라는 주님의 은혜로운 선포가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에게만이 아니라,
    매 미사 때 마다 강론 대에서 울려 펴지는 목자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신앙인 모두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금전만능,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심지어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묘하게 성취한 사람의 우월감이 연약한 사람의 마음을 무수히 짓밟는 세상,
    그리고 그것이 경쟁의 당연한 결과로 여기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처럼 신앙인인 제가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삶이기보다
    자신의 영악함을 믿는 삶을 살지 않았나...
    이런 불쌍한 저에게 하느님의 말씀에 믿음과 희망을 두고 용기를 내어
    그 영악함의 가죽을 벗으라고..
    오늘 신부님 강론 글의 행간을 통해 들려오는 목자의 목소리가 저의 귓전을 울리고
    가슴을 두드리는 이 순간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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