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베드로가 사탄이면 저도 여러분도 사탄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사랑을 해도 사탄입니다.
우리는 사탄을 악한 일을 하는 존재로만 생각하고
증오의 화신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을 파괴하는 행위자로만 생각하는 거지요.
그런데 오늘 주님 말씀에 따르면 사탄의 기준은
사람의 파괴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파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파괴하는 행위자가 사탄인 이유도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파괴이기 때문에 사탄인 거지요.
노아의 홍수 후 새 계약을 보면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첫 창조 때에는 식물을 먹을 수 있지만
동물을 먹는 것이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동물을 인간이 잡아먹을 수 있다고 하면서도
피가 있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눈 가리고 아옹 같지만
그런데 고기는 어쩔 수 없이 먹더라도 피만은 먹지 않음으로써
하느님의 생명만은 소중히 여기고 훼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이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계약이며,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무지개의 의미입니다.
고기를 먹되 피는 먹지 않기로 계약을 맺고
그렇게 할 때마다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라는 하느님의 명을 상기키로 한 것입니다.
하나의 예가 십자성호입니다.
천주교 신자는 밥을 먹을 때 십자성호를 긋기로 하였지요.
그리고 어떤 때는 기도하는 마음 없이 습관적으로 긋더라도
그것은 내가 천주교 신자로서 하느님이 주신 음식을 먹는다는 뜻이지요.
더 놀라운 계약, 새 계약이 있지요.
주님께서는 돌아가시면서 포도주로 새 계약의 표를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그것을 주님의 피로 생각하며
영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지요.
주님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나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포도주를 마십니다.
그러나 그는 그저 포도주를 마시지 주님의 피로 생각지 않고 마십니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는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는 사람들과 달리
그리고 개신교 신자와도 달리 포도주를 주님의 피로 마시기로 했고,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는 말씀대로 그것을 미사 전례화 했지요.
다시 앞으로 돌아가 사랑은 주님의 계명이고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의 행위는 사탄의 짓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거나 방해하는 사랑의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사랑의 행위여도 사탄의 짓일 수 있습니다.
아들이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을 아비가 막는 것은 사랑일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이기에 사탄의 짓이거나
적어도 하느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간적인 사랑입니다.
저의 어머니 경우 제가 북한관계 일을 할 때 위험하니 하지 않았으면
하는 모정도 있었고 그러나 하느님의 일이니 적극적으로 막지도 않으셨고
그래서 제가 그 일을 할 때 위험하지 않게 해달라고 어머니는 기도하셨지요.
그래서 제가 생각할 때 우리는 베드로 사도처럼 그리고 우리 어머니처럼
사탄이기도 하고 제자이기도 합니다.
남을 위한 사랑이라는 착각과 스스로의 만족은 아니었는지 합리화를 경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