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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을 쓰신 그리스도 : 쥬세페 산 마르티노 (Giuseppe Sanmartino)

by 이종한요한 posted Apr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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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베일을 쓰신 그리스도 (Cristo velato : 1753)

작     가 : 쥬세페 산 마르티노 (Giuseppe Sanmartino, 1720-1793)

    기 : 대리석 (50cm × 80cm × 180cm)

소 재 지 : 이태리 나폴리 산 세베리노 경당 (Cappella Sansevero, Naples)


가톨릭 성미술의 중심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우리와 꼭 같은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부활의 희망을 보이신 주님이시기에 성미술의  중심은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이것은 십자가에 달리시어 죽으신 주님과 그 후 매장을 위해 십자가에 내려진 주님이 중요한 것이었다.


이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 후 내려져서 성모님과 제자들의 애도 속에 무덤에 묻히시기 전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은 인간의 모든 정감이 다 함축적으로 표현되는 것이기에 성화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사랑받는 주제였다.


십자가에 내리신 예수님은 그분이 겪으셨던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더 없이 비참한 모습으로 드러나는게 보통인데, 이 작품은 전혀 다른 모습, 즉 십자가 죽음의 종착역은 부활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더 없이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어 사람들에게 전통적인 표현과 다른 감동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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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수난과 연관된 예수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만한 모습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셨다.” (이샤 52: 2-4)

이것이 전통적으로 수난하신 예수님께 강조하던 표상이었으며 많은 성화에선 이 장면이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 주제에 접근했다. 주님의 죽음을  인간적인 감상 차원에서 접근하는게 아니라 더 높은 차원, 즉 죽음의 승리와 희망 영광 구원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했다.


이렇게 좀 예외적인 차원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Baroque) 양식의 덕분이었다. 중세 르네상스 전까지 인간의 육체는 죄와 연관되는 것이기에 표현에 있어서 육체적인 표현은 불완전하고 심지어 악마적인 것으로 폄하되곤 했다.


이것이 종교개혁으로 이어지면서 예술에 있어서도 육체의 표현은 이런 부정적인 견해에 겹쳐 오늘 이 땅의 여러 개신교도들이 주장하는 우상이라는 개념과 연관지우면서 원천적인 봉쇄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인위적이고 비성서적인 태도는 바로크 시대가 도래하면서 극복되었다.


르네상스에 이어 시작된 바로크 미술에 있어 인간의 육체는 더 이상 억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도구라는 새로운 개념이 형성되었다. 즉 그동안 철저히 억압해왔던 인간의 상상력은 인간의 육체 표현을 종교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키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표현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해석으로 드러나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바로 이런  바로크 예술적 표현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드러낸 괄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나폴리 공국의 귀족인 라이문도 상그로(Raimondo di Sangro)가 자기 가족들의 무덤으로 사용할 경당을 위한 작품으로 당시 나폴리에서 대단한 명성을 얻고 있던 젊은 조각가인 쥬세페 산 마르티노  (Giuseppe Sanmartino) 의뢰해서 제작한 것이다.


서양 조각의 주재료인 대리석으로 여러 걸작을 남긴 작가가 많으나 이 작가는 작품을 많이 제작하지 않았지만 이 작품으로 바로크 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으며 얇은 천을 쓰고 계신 주님의 모습을 통해 과거 어떤 작가도 표현하지 못했던 주님 죽음의 심원한 실상을 제시했다.


이 작품은 성서의 다음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다.


“낮 열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을 덮어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해가 어두워진 것이다. 그때에 성전 휘장 한 가운데가 두 갈래로 찢어졌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루카 23: 44-46)


인간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극심한 고통을 겪으시고 숨을 거두신 주님의 모습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의뢰한 라이문도 디 상갈로의 요구 조건에 부응해서 이 작품을 제작했기에 이 작품에는 조각가로서 작가의 재능과 주문자인 귀족의 심원하고 폭넓은 신앙이 담긴 것이다. 


라이문도 디 상갈로(Raimondo di Sangro)는 당시 의심 할 여지없이 나폴리에서 1700년대 중반의 대중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킨 신비하고 강력한 예언적 지성을 지닌 인물이었으며 그는 당시 교회가 금했던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다.


한마디로 나폴리 공국에서 인정받는 지성인이었기에 인간의 이성과 지성을 위험시 하던 교회의 가르침에 받기를 들고 프리메이슨 단원이 되었다. 이 단체는 중세의 석공들의 조합으로 시작되어 중세기에는 주로 노동자들이 집단이었으나 중세기가 지나면서 이들의 성격이 변화되었다. 이들은 더 이상 노동자들의 단체가 아닌 우주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인류애를 실천하는 단체로 변했다. 


교회는 신자들에게 이 단체의 가입을 금하고 어기면 파문에 처했으며 그러기에 아직도 프리메이슨은 반교회 단체로 치부되고 있으나 실상은 다른 것이다.


신자로서 인간의 지성과 이성의 활동을 강조하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비밀 회원으로 가입했음을 알 수 있다. 유명한 음악가인 모차르트도 천재적 작가로 평가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 외 인류 발전에 획기적인 역할을 했던 많은 지성인들이 이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교회의 예술 활동에도 큰 역할을 했다. 


오늘 교회는 프리메이슨에 대해 과거처럼 박해나 비판은 않으나 침묵 가운데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고 있으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모차르트의 예술에 대해선 더 없이 복음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이 작품 역시 표현에 있어 경직된 교회가 하지 못하던 경지를 표현할 수 있는 주문자의 강렬한 이상과, 이것을 표현할 수 있는 대단한 기량을 지녔던 작가의 현실이 조합되어 십자가의 죽음과 연관된 혁명적 작품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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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크기의 주님께서 누워 계신다. 십자가에 달려 목숨이 끊어진 상태에서 내려진 주님께서 돌판 위에 누워 계신다. 주님 발치에는 그분을 십자가에 달았던 못, 그분이 쓰셨던 가시관이나 다른 고문 연장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놓여 있는 것이 그분이 조금 전까지 치루었던 처참한 십자가의 죽음을 연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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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몸 전체는 베일에 싸여 있는데 이것은 십자가에서 내린 후 매장을 하기 전 시신을 수습하고 입혔던 수의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누워 계신 그분의 몸은 전혀 다르다. 너무도 평안한 모습으로 누워 계신다. 이사야 예언자가 표현한 그런 고통의 겪은 사나이와는 거리가 먼 그런 평온스런 모습이다.


몇 년전 멜 깁슨(Mel Gibson) 감독이 제작해서 전 세계 크리스찬들을 감동시킨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등장하는 피투성이의 예수님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잘 정돈된 베게 위에 더 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누워 계신 주님에게서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비참한과는 거리가 먼 더 없이 평안하고 기품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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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어떤 신념이나 사상을 가진 사람들도 다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준수한 귀공자의 모습이다. 오늘날 언론 매체를 통해 자주 등장하는 얼굴이나 몸매가 반반한 그런 꽃미남이 아니라 한 인간 남자로서 숭엄하고 기품 있는 그런 존재성을 보이고 있다.


그분의 삶이 어떻든 어떤 이상을 지녔는지를 보기 이전에 그 외모를 통해서도 높은 수준의 인간성을 지닌 분이심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성서에도 외모를 통해서 드러나는 그분의 인격성과 정화된 내면세계를 인정하는 부분이 있는데, 시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인간의 아들네보다 짝 없이 아름다우신 그 용모 당신 입술에는 은총이 넘쳐흐르기에 주께서 당신을 영원히 축복하셨나이다.” (시편 45(44), 3)


예수님의 가르침은 모든 선의의 인간들을 다 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작가는 과거 다른 작가들이 표현치 못했던 파격적인 예수님의 육체성을 통해서도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그분의 인격성에 접근하게 만들고 있다.


이 작품이 있는 경당은 오늘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기에 경당에서 박물관으로 변경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열어두고 있다.


제한된 장소 관계로 인원을 제한하고 있으나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온 관람자들의 줄은 언제나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예술가들은 신학자들과 다른 차원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임을 느끼게 된다.


대리석 위에 예수님의 베일을 쓰고 있으면서도 보이는 것은 신기에  가깝기에 주문자가 연금술의 대가라는 것 때문에 여러 신비적인 소문도 많았으나 주문자와 확신을 탁월한 재능으로 표현한 작가의 작품이란 결론에 으르기 되었다.


정확한 표현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좁은 표현이 되기 쉽고 벽을 만들기가 쉽다. 교회가 제도화는 필연적인 과정이긴 하지만 안타까움이라면 경직된  교리 체제나 시대착오적인 법의 강조로 복음의 유연성과 자유가 질식하거나 위축되는 예가 많은데, 이 작품은 참으로 교회가 경직되었던 시대에 이것을 과감히 뛰어넘은 예언적인 시도라 볼 수 있다.


역사 안에서 예술가들의 파격적인 표현은 많은 경우 그 시대에 꼭 필요한 복음의 예언자적인 표현이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있은 후 최소한 2세대가 지난 후 기록된 복음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의미성이 다르게 제시됨을 볼 수 있다.


초기에 기록된  마르코 복음과 마태오 복음에서는  십자가의 처절성이 집중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르 15: 34  : 마태오 27: 46) 라는 예수님의 절규로 그 분 죽음의 비참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것은 전통적인 표현에서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루카 복음에서는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루카 23: 46)로 바뀌면서 십자가 죽음이 포함하고 있는 승리를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에 쓰여진 요한 복음에서는  “다 이루었다”(요한 19:30) 라고 선포됨으로서 예수님의 죽음은 새로운 창조의 시작을 암시하는 것으로 끝내고 있다.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창세 2:1)는 창세기의 약속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실현된 것임을 표현하고 있다. 


베일로 가려진 상태에서 누워 계신 예수님 안에는 분명이 시신임에도 부활 신앙의 최고 경지인 생명이 숨 쉬고 있음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작가는 예수님 십자가 죽음에 대한 통합적 표현을 한 요한복음 사가의 견해를 표현하고 있다. 


근세 여러 교황님들은 교회 미술에 대한 여러 식견 있는 견해를 문헌으로 표현하셨는데 하나같이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러시아 작가 토스토엡스키(Dostoevsky)의 견해를 지지하셨다.


이 작품은 표현이 아름답기 이전에 이분법적으로 표현되기 쉬운 미숙하고 왜곡된 신앙을 극복하는데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


십자가의 신앙이 전통적인 표현처럼 고통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강조되다 보면 예수님 십자가 죽음의 의미성이 왜곡되면서 신앙이 인간적 미숙으로 표현되거나 희생에 대한 일방적 강조로 인간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이것은 인간적 가치를 강조하는 현대인들에게 종교가  주고 있는 큰 실망과 의문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아름다움의 표현이 얼마나 크리스챤 신앙을 총체적으로 감동적으로 전하는 것임을 알리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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