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큰 시련을 닥칠 때 한 사람과 그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고
더 단단해질 수도 있는데 그 사람과 인생이 이때 시험대에 오르는 거지요.
산전수전을 다 겪어 그 그릇이 크고 단단한 사람은 웬만한 시련에 인생이
좌초하지 않고 늘 있었고 또 있게 마련인 시련이 또 왔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임으로써 또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시험대에 올려놓는 시련이란 어떤 것들입니까?
제 생각에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일과의 관계인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련이란
적대자인 누가 나를 미워하고, 반대하고, 죽이려들 때와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될 때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바오로 사도가 적대자들로 인해 반대를 받고
돌팔매질을 당해 죽기 직전까지 가는 시련을 당한 것과
오늘 복음에서 사도들이 예수님과의 이별을 앞 둔 것이 바로 이런 거지요.
그러나 적대자들로 인한 시련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 시련이
우리 신앙인에게는 그저 인생의 시험대로 그치지 않고
신앙의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거나 죽게 되었을 때
그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참 신앙인이라면
나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니 슬프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그가 죽는 것이 불행이 아니고 행복이라고 이해해야 하고
그래서 슬퍼하거나 마음 아파할 것이 아니라 기뻐하고 축하해야 할 것인데
그것은 죽는 것이 나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가는 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사도행전의 바오로처럼 박해를 당할 때에도
성숙한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르고 참 신앙인은 더 다를 것입니다.
박해가 순교자와 배교자를 가르듯 적대자들의 박해는
우리를 신앙에서 낙오하게도 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겪어야 할 환난으로 받아들이게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니 시험대에 오르는 것이 실은 하느님 나라에 오르는 거지요.
일과의 관계에서 시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이 자꾸 꼬이거나 실패를 거듭할 때 우리는 이로 인해
인생의 시험대에도 오르고 신앙의 시험대에 오르게도 되는데
인간적으로는 패배주의적인 사람인지 진취적인 사람인지 판가름 나고
신앙적으로는 내가 성취욕적인 사람인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는 사람인지 판가름 날 것입니다.
아무튼 사람과의 관계에서건 일과의 관계에서건
시험대에 올라 시련을 통과한 사람은 그 결과가 평화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돌팔매질로 죽다 살아난 뒤에도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 치료도 하지 않고 남을 위해 복음을 선포합니다.
평화란 이처럼 엄청난 일이 있었어도 아무 일 없었던 듯 평상심을 지니는
것인데 이 평상심과 평화는 당신이 주시는 거라고 오늘 주님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그러므로 갖가지 것으로 우리를 시험대에 올리시는 주님이
평화도 주십사고 기도하는 오늘이 되고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18년 부활 제5주간 화요일
(성령의 평화)
http://www.ofmkorea.org/121513
작은형제회
17년 부활 제5주간 화요일
(평화와 평안은 다르다.)
http://www.ofmkorea.org/103712
작은형제회
16년 부활 제5주간 화요일
(태연도 평화려니.)
http://www.ofmkorea.org/89058
작은형제회
15년 부활 제5주간 화요일
(평화에 안주하지 말라!)
http://www.ofmkorea.org/77766
작은형제회
13년 부활 제5주간 화요일
(평안 없이 평화 없고, 주님 없이 평안 없다.)
http://www.ofmkorea.org/53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