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는 재속회 강의를 하면서
'완덕의 학교'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희가 쓰는 교재에 나오는 주제는
"누가 완전한 사람인가"라는 작은 항목이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완덕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완덕으로 나아가는 길에 서 있는 우리는
때로 오리무중을 걷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방황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우리에게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우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그 길을 제시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 사건을 통해
그 완덕의 상태, 하느님과 합일의 상태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이 사건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지를,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 구원에 초대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그러나 이 초대는 결코 기쁘기만하고 즐겁기만한 것은 아닙니다.
매 순간 우리의 결심을 새롭게 해야하고,
제자들처럼 우리를 두렵게하며 고통과 죽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가야할 길은 험난하고 거친 가시밭길이며,
어디를 둘러보아도 내편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우리이기에 이 길이 더욱 험난하게 느껴십니다.
태어날 때부터 흠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완전한 사람은 perfect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함을 갖추는 complete한 사람입니다.
이 완전함을 갖추는 힘을 관계맺음입니다.
오늘 독서의 아브라함이 이 흠없는 사람의 표징입니다.
하느님과 맺은 튼튼하고 의심없는 관계가 그를 흠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구원의 약속이 실현됩니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라함 또한 캄캄하고 두려웠겠지만, 고통을 직면하고
하느님을 신뢰하며 묵묵히 그길을 갔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의지는 우리에게 늘 기쁨과 고통, 즐거움과 슬픔같은
상반된 과정과 결과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바오로의 말씀처럼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저 믿고 따를 뿐입니다.
사부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여러분, 우리 모두 당신 양들을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감수하신 착한 목자를 바라봅시다. 주님의 양들은 고통과 박해, 모욕과 굶주림, 연약함과 유혹, 그리고 다른 갖가지 시련 가운데 주님을 따랐기에 주님한테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영적 권고 6)
그러니 이 구원의 초대장을 들고 그리스도를 따라 다시 길을 떠나야 겠습니다.
'완덕의 학교'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희가 쓰는 교재에 나오는 주제는
"누가 완전한 사람인가"라는 작은 항목이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완덕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완덕으로 나아가는 길에 서 있는 우리는
때로 오리무중을 걷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방황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우리에게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우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그 길을 제시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 사건을 통해
그 완덕의 상태, 하느님과 합일의 상태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이 사건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지를,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 구원에 초대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그러나 이 초대는 결코 기쁘기만하고 즐겁기만한 것은 아닙니다.
매 순간 우리의 결심을 새롭게 해야하고,
제자들처럼 우리를 두렵게하며 고통과 죽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가야할 길은 험난하고 거친 가시밭길이며,
어디를 둘러보아도 내편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우리이기에 이 길이 더욱 험난하게 느껴십니다.
태어날 때부터 흠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완전한 사람은 perfect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함을 갖추는 complete한 사람입니다.
이 완전함을 갖추는 힘을 관계맺음입니다.
오늘 독서의 아브라함이 이 흠없는 사람의 표징입니다.
하느님과 맺은 튼튼하고 의심없는 관계가 그를 흠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구원의 약속이 실현됩니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라함 또한 캄캄하고 두려웠겠지만, 고통을 직면하고
하느님을 신뢰하며 묵묵히 그길을 갔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의지는 우리에게 늘 기쁨과 고통, 즐거움과 슬픔같은
상반된 과정과 결과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바오로의 말씀처럼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저 믿고 따를 뿐입니다.
사부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여러분, 우리 모두 당신 양들을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감수하신 착한 목자를 바라봅시다. 주님의 양들은 고통과 박해, 모욕과 굶주림, 연약함과 유혹, 그리고 다른 갖가지 시련 가운데 주님을 따랐기에 주님한테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영적 권고 6)
그러니 이 구원의 초대장을 들고 그리스도를 따라 다시 길을 떠나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