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은
다른 말로 종말이 다가왔음을,
심판의 때가 다가왔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음을 알리는 복음이
마냥 기쁜 소식으로 다가오지만은 않습니다.
종말, 심판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지고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기쁨으로 다가오지만,
그 심판을 제대로 통과할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에,
그것은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즉 우리 안에는 두 가지 모습이 다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갈라질까요?
오늘 복음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무리가 나타납니다.
평화를 전하는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는 사람들로 갈라집니다.
그들에 대한 제자들의 행동은,
중간 부분을 생략하고 마지막 부분만 본다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것으로
똑같습니다.
즉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나
누구에게든 하느님의 나라는 가까이 왔습니다.
즉 종말과 심판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적으로 다릅니다.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입니다.
그들은 병의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1독서에서 이사야가 이야기하는
그 행복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에는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는
무서운 심판의 순간입니다.
끔찍하게 멸망하게 된 소돔보다
더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제자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파견하신 예수님,
더 나아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거부하기에,
하느님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데,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과 영원토록 함께 하는 것이다보니,
그만큼 고통스러운 상태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느님 아닌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돈이나 여행 보따리나 신발에 집중하다보니
정작 하느님은 온데 간데 없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그러한 것들이 필요하지만,
내 안에 있는 허한 마음을 그것으로 채우려할 때,
그것만이 전부인양 살아갈 때,
우리는 하느님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러한 것에 마음을 쓰고 있는지는,
그러한 것들을 빼앗길 때
화가 나거나 자존심이 상한다고 느끼는지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지,
물질에 연연해하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이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스스로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실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