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여러 차례 한 해의 목표로 삼았던 것이
<형제의 잘못을 보지 말고 고통을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목표로 삼은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목표로 삼았던 것은
잘못보다 고통을 보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겠지요.
예를 들어 서울역의 노숙자를 봤을 때
그들의 가엾음과 고통을 보기보다는 그들의 더러움을 더 보고
더 나아가 그들의 게으름을 더 보게 되기 쉽지요.
그런데 노숙자들의 가엾음이 뻔히 보이는데도 어찌 보지 못할까요?
제 생각에 그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가에서 오래 전부터 내려왔고 우리나라 성철스님이 얘기해서 유명한 말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말입니다.
선의 화두이기에 그 해석이 다양하지만 제 식대로 풀이하면
첫째는 자기 관점에서 보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의 이쪽에서 보면 서산이지만 저쪽에서 보면 동산이고,
산 안에서 보면 산이 보이지 않지만 산 밖에서 보면,
그것도 멀리서 보면 산이 보이고 그때, 산은 산입니다.
사람은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있고 저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런저런 사람을 자기중심으로 보면
내 마음에 드는 사람과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저 사람일뿐인데.
마음에 들면 예쁘고 들지 않으면 밉고,
마음에 들면 그의 고통이 보이고 들지 않으면 잘못만 보입니다.
또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에 사랑이 들어와 있으면 그가 있는 그대로 보이고 고통도 보이지만
내 마음에 미움이 들어와 있으면 그가 하는 짓마다 마음에 들지 않고
그래서 잘못만 눈에 들어옵니다.
또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겸손하면 이웃을 그대로 보고 그래서 그의 약점도 보고 고통도 보지만
교만하면 내 중심적으로 보기에 낮추어보게 되고 잘못만 골라보게 되며,
심지어 무시하게 되는데 우리말로 바꿔 얘기하면 업신여기게 되는 겁니다.
업신여긴다는 우리말은 누가 분명히 있는데도 없이 여기는 것이니
얼마나 대단한 시선의 왜곡이고 굴곡입니까?
아무튼 오늘 복음에서 사라의 주님은 군중의 가엾음을 보시는데
바리사이들은 군중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못마땅한 주님만 보이고 그것도 악마의 수괴로만 보입니다.
요즘 정치권 특히 모 정당을 보면 국민의 어려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일본의 무역제재로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운데도 그것은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반대하고 끌어내려야 할 대통령과 여당만 보입니다.
맞불작전인지 그런 야당에 맞대응하고 맞고소하느라
국민의 고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여당도 못지않게 한심합니다.
양쪽 다 사랑의 눈으로 보지 않고 권력 다툼의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정치가든 신앙인인 우리든 눈의 정화가 필요한데
사랑이 가장 완전하고 탁월한 세정제요 정화제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 그들 안에서 죄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유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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