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죽어야 하는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만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거짓된 나이다.
그것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존재의 죽음
나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
선하고 무고하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
비교하고 경쟁하고 자신을 다른 사람 위에 올려놓는 것들
옹졸하고 거짓된 자아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집착의 뿌리
조작된 평가와 칭찬과 인정
허상으로 이끌어가고 죄짓게 하는 것들
정확하게 이런 것들이 죽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놓아버릴 때
위로부터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가난한 인식 안에서
더 깊은 수준으로 들어갈 수 있다.
고통으로 배우는 진리
십자가를 바라보는 깊은 응시
하느님과 인간이 겪는 깊은 응시
거기서 나오는 통곡으로부터 공감과 이해의 능력이 생기고
기도의 영 안에서 측은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용서하고 돌보려는 실천적 의지가 나온다.
용서가 아닌 다른 수단들로는 악의 문제에 접근할 수 없다.
악을 깊이 바라볼수록 그 악에 자신이 연루되어 있음을 본다.
우리에게 가장 큰 유혹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애쓰는 것이다.
수치를 감추려는 교묘한 위선과 거짓말
미워하고 죽이고, 죽이기로 한 사람, 공격하고 죄인으로 단정 짓는 것은 나다.
죄인이라고 알려주는 힘 있는 이들에 따라 생각 없이 믿고 그렇게 해왔고
내가 죄인이라고 알려준 것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그렇게 해왔다.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희생된 어린양 안에서
타인을 희생제물로 만들려는 마음을 멈출 수 있다.
그 과정은 신비롭다.
아직 피워보지 못한 꽃봉오리
창조 때 받은 숨겨진 선이 막 개화의 겉껍질을 벗으려 한다.
고통 속에서 깨닫는 하느님의 부드러운 음성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그분은 전능한 독재자가 아닌 함께 참여하시는 연인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연인이요 친구요 아버지이신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한 나의 일이 아닌 나를 통하여 이루시는 하느님의 일,
용서를 통해 누군가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