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오늘 주님의 말씀들을 들으면서 두 표현, 곧
<네 형제가>, <단둘이 만나>라는 표현에 마음이 찔렸습니다.
먼저 <네 형제가>를 보겠습니다.
오늘 주님 말씀에 의하면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래서 내 형제가 아닌 사람이 내 형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제가 찔린 것은 형제가 내게 잘못한 것 때문에
저는 형제를 제 형제에서 밀어내고 남이거나 원수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잘못 했어도 형제인데 잘못 때문에 형제관계를 깨버리는 것은
돈 백 만원 때문에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다음으로 <단둘이 만나>를 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말씀에 제가 찔린 것은
이 면에서 제가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형제가 내게든 다른 사람에게든 잘못을 하면
단둘이 만나 그러니까 직접 형제에게 잘못을 얘기해줘야 하는데
뒷얘기까지는 하지 않지만 단둘이 만나 그것을 얘기해주기를 꺼립니다.
왜 꺼릴까요?
첫째는 비겁함 때문입니다.
둘째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사랑 없기 때문이고 사랑의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겁함 때문이란 나도 잘못하는데 남 잘못 얘기할 처지 못된다는
그럴 듯한 핑계 때문에 용기 있게 얘기를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인데
이것은 너의 잘못이든 나의 잘못이든 잘못은 고쳐야 한다는
마음자세가 없기 때문에 너의 잘못이든 나의 잘못에 눈감는 것입니다.
두려움 때문이란 잘못을 얘기해줬을 때 그와 관계가 깨지는 두려움과
그로부터 받게 될 미움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사실 겸손치 못하고 그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 자신감이 없으면
괜히 별것 아닌 것 때문에 더 중요한 관계가 깨지는 것이 두렵고,
무엇보다도 미움 받는 것이 두렵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겸손해야만 잘못을 얘기해줄 수 있고
사랑이 두려움보다 커야만 용기 있게 얘기해 줄 수 있습니다.
겸손하면 너만 잘못이 아니라 나도 잘못이 많으니 같이 고치자는 태도로
얘기할 것이기에 얘기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얘기하면 통합니다.
또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사랑의 자신감이 있으면
미움이 없기 때문에 얘기해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랑이 없어서 얘기를 못하는 것은 미움이 얼마간 있기에
그 미움 때문에 얘기해주지 못하는 겁니다.
어쩌면 미움보다 사랑이 더 크고 많은데도 그 작은 미움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너의 잘못 때문에 미워하지 않고
잘못에도 참으로 사랑해‘라는 자신감이 있어야 얘기해줄 수 있습니다.
(영원한 나그네)
http://www.ofmkorea.org/109669
15년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겸손치 못할 바에야 숫제 아무 것도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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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교정의 단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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