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차 얘기한 바이지만 성모님의 이러저러한 축일이 많은 것은
어머니 마리아가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와 모든 면에서 함께 하셨고
그래서 같아지셨다는 뜻에서 축일이 제정되었기 때문인데
성모 승천 대축일도 예수 승천 대축일과 같은 뜻에서 제정되었지요.
그런데 교회가 성모님의 축일을 이렇게 제정한 것이 마리아를 위해서일까?
아니라는 것도 제가 누차 얘기한 바입니다.
마리아뿐 아니라 성인들이라면 당신들 축일을
우리 교회가 제정하지 않는다고 섭섭해 할 분들이 아니고,
그래서 성모승천도 마리아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제정한 겁니다.
그러니까 승천하신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우리도 승천하는 것이
이 축일의 의미이고 그래서 본기도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느님,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이시며 성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하늘로 부르시어 그 육신과 영혼이 천상 영광을 누리게 하셨으니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그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그렇다면 마리아처럼 승천키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본기도에 의하면 티 없이 깨끗해지는 것이 요구되겠지요?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마리아는 원죄 없이 잉태되셨기에 가능한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우리에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깨끗한 것이 아니라 깨끗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깨끗한 것이 아니라 더러워졌다가 깨끗해지는 것이며
깨끗해지는 것도 우리 스스로 정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세탁해주심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선 내가 더러워졌다고 인정하는 것이며
다음으로 깨끗해지기를 원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더러워진 나를
하느님 사랑 앞에 빨아달라고 내놓는 것입니다.
어제는 정동에 일하러 가다가 영등포역을 지나가는데
신호등에서 차가 섰을 때 밖을 내다보니 노숙자가 자기 살림살이를
제법 그럴듯한 손수레에 담아가지고 다니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옷가지나 옷차림은 빨래한지 오래된 거였습니다.
빨래를 하기 쉽지 않아서 그리 된 거겠지만
더러움에 익숙해지고 오히려 더러운 것이 편해진 탓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도 영적여정에서 그럴 수 있습니다.
깨끗하게 사는 것 힘듭니다.
죄짓지 않는 것이 힘들뿐 아니라 죄짓지 않으려했는데 그래서
고백성사를 봤는데 또 같은 죄를 짓는 자신을 매번 보는 것이 힘듭니다.
그래서 그런 고백성사를 보고 또 보고 깨끗해지려하기보다
어제 그 노숙자처럼 더러운 것에 길들여지고 편해지는 쪽을 선택합니다.
깨끗해지려고 하다가 그리 안 되는 것 때문에 매번 괴로워하기보다
더러운 것에 길들여지고 편하게 살다가 죽기 전 마지막 한번에
그러니까 종부성사 때 성사보고 깨끗해지는 것이 낫다 생각하는 거지요.
승천전략으로는 아주 현명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천국을 사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고
죽어서나 천국을 가겠다는 것이지요.
저는 세탁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편이지만 제 주변에는
매일 세탁을 하는 분들이 많고 그것을 그리 힘들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자동세탁기가 있어서 빨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내놓기만 하면 되니 말입니다.
우리에게도 자동세탁기가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하느님 사랑 앞에 내놓기만 하면 됩니다.
(백지수표를 내밀듯)
http://www.ofmkorea.org/136594
17년 성모 승천 대축일
(성모님 처럼 우리도 은총의 육체를)
http://www.ofmkorea.org/109635
16년 성모 승천 대축일
(마리아는 당신만 하늘에 오르지 않으신다.)
http://www.ofmkorea.org/92583
15년 성모 승천 대축일
(희망과 위안을 주는 성모 승천)
http://www.ofmkorea.org/81315
11년 성모 승천 대축일
(행복과 불행을 넘어서는 행복)
http://www.ofmkorea.org/5255
10년 성모 승천 대축일
(지상성을 떨치고 하늘에 오르다)
http://www.ofmkorea.org/4308
08년 성모 승천 대축일
(아들을 낳아주신 어머니 감사합니다.)
http://www.ofmkorea.org/1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