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찾는 세상에서 찾은 답을 지우기
하느님의 초대는 우리의 선택에 자유를 부여하신다.
삼위일체의 하느님의 위격적 사랑에 참여하도록
권유하셨지 명령하신 것이 아니다.
“새로 나야 한다.”(요한 3,3) 는 말씀은
과거와 결별하는 것이라기보다 잘못 배운 것을 지우는 작업과 관련되어있다.
사람이 만든 것들을 섬기는 우상을 지우는 작업은 그리 쉽지가 않다.
인생의 후반부를 살면서 터득한 것은
젊은 날, 답이라고 배운 것들은 답이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며 답으로 둔갑한 답이었다.
하느님은 답을 주시지 않고 길이 되신 분이시다.
그 길을 따라가는 과정이 나에게 길이 되었다.
인식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은 과거를 답습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를 통해 반사되는 하느님의 빛과 숨결에 주파수를 맞추는 데서 온다.
하느님의 작품인 우리가 작품을 만드신 분에게 돌아가는 길은
우리를 통해 이루시는 하느님의 선에 겸손하게 참여하는 길이다.
그 길은 위대한 모험이 뒤따른다.
자유를 위한 모험에 후반 인생을 걸었다.
현재라는 시간은 고통받는 세상에 희망의 불을 들고 뛰어들 각오와 결단을 내릴 시간이다.
변화는 내 안에서부터 서서히 시작된다. 나의 변화는 작은 것들이지만 작은 것이 아니다.
희망의 누룩으로 주변을 부풀리기 때문이다.
답으로 둔갑한 답을 답이라고 생각하는
험담과 조롱과 불신, 업신여김의 지배문화의 한 가운데서
스스로 확산하는 성령의 힘으로 행하는 선은 언제나 주변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