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오늘 연중 제 24 주일의 주제는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죄로부터의 구원이고,
자비란 사랑 중에서도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주님 말씀 중에서 저에게 가장 와 닿은 말씀은
<하늘에서는>과 <잃은 양>과 <내 양>이라는 표현입니다.
<하늘에서는>은 <땅에서는>과 대비되는 것을 얘기하기 위해 쓴 표현인데
땅에서는 어떤 양이 무리와 같이 있지 않으면 양이 제멋대로 무리에서
이탈하여 <길 잃은 양>이라 하며 포기하는데 하늘에서는 <잃은 양>이라
하며 그런 양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내 양>이라고 한다는 점입니다.
하느님께서 한 번도 죄를 지으라고 하신 적이 없으니
죄를 지은 것은 분명 우리 인간이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떠난 죄도 한 번도 하느님이 우리를 떠나라고 않으셨으니
오늘 비유의 작은 아들처럼 우리 스스로 하느님을 떠난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 당신을 싫다고 하며 떠난 죄인을
아무리 괘씸해도 하느님께서는 포기하거나 악마의 자식이라고 내치지 않고
끝까지 당신의 아들, 곧 <내 양>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느님이 사랑이 대단하셔서 그런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제가 생각할 때 사랑 이전에 근원적인 관계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아무리 부자의 연을 끊고 살자고 해도
부모가 부모 아닐 수 없고 자식이 자식 아닐 수 없고,
그래서 나를 싫다고 떠나도 내 자식일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제가 자주 얘기하듯 자식의 모든 죄는 그 원죄가 부모에게 있습니다.
그렇게 낳았고 그렇게 키웠기에 그런 죄를 지은 것이니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우리가 무슨 죄를 지어도
그 죄의 원죄를 지으신 것이고 이것이 하느님의 최대 약점입니다.
그런데 부모나 하느님은 죄를 지어도 우리를 당신 자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당신 소유가 아니라는 뜻에서 자식이기를 거부하고 떠납니다.
나는 나지 당신 소유가 아니고 그래서 당신 아들도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떠난 죄를 짓고 그래서 고생을 숱하게 하고 어쩔 수 없이
아버지께 돌아가기로 하지만 한 번 부자의 연을 끊고 떠났으니
이제는 자기가 아들이 아니고 품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지었건 짓지 않았건
작은 아들처럼 당신을 떠났건 큰 아들처럼 떠나지 않았건 당신 아들입니다.
죄를 짓고 당신을 떠난 아들이 괘씸한 것이 아니라 불쌍한 것이고,
그래서 아들이 뉘우치고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문간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생 면하려고 죄 지은 놈이 뻔뻔하게 돌아온 것이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온 것이고 그러므로 죄인의 귀환이 아니라 아들의 귀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죄인이지만 아들로 복귀해야 하고,
그래서 우리의 회개도 아버지께 복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죄인에서 아들로 복귀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지 않고
늘 아들이라는 신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밥이나 굶지 않기 위해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아들로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우리는 오늘 아무리 죄송해도 아들로 아버지께 돌아가야겠습니다.
(사랑은 죄 때문에 자비가 되고, 자비는 죄 때문에 드러난다.)
http://www.ofmkorea.org/93314
15년 연중 제24주일
(나는 수치 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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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연중 제24주일
(회심과 항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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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연중 제24주일
(철면피와 차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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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연중 제24주일
(분노와 복수심의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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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연중 제24주일
(사랑은 마음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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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 연중 제24주일
(고민하는 사탄)
http://www.ofmkorea.org/3088
가지고 있었을 때는 그것의 소중함을 모르다가 잃어버린 후에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걸보면 인간이 똑똑 한 것
같으면서도 왜 그렇게 어리석은지요..
오늘 복음에서 작은 아들은 아버지 곁에 있을 때는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아버지 곁은 떠나 요샛말로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개고생을 해야 철이 드니 말입니다.
집을 박차고 나간 아들이 언젠가는 돌아 올 것이라는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과거를 묻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자비,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훅~하고
가슴을 파고듭니다.
제가 하느님을 믿는 까닭은 잘못을 뉘우치는 자에게 과거를
묻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지나간 과거를 손댈 수 없다는 절망적 상황에서 과거를 묻지
않으시는 하느님 이야말로 구원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서 떠나갔지만 혹여 마음이 바뀌어 그가 돌아 왔을 때
내가 떠난 빈자리를 느낄 그가 눈에 어른거려 차마 떠나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록 다시 돌아갈 염치는 없지만 다시 돌아가면 받아 줄 것이라는 상대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존재하기를 다짐하는 이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