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과 하강의 역사
바깥으로 향하던 통제를 안으로 바꾸는 결단이
후반기 인생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밖으로 휘두르던 칼을 안으로 향하게 하고
상승만을 추구하던 사람이 하강을 선택하며
바닥까지 내려가도록 허용하시는 하느님의 허용을 배운다.
자기중심적이고 흑백논리의 세계관이 실패를 통해서,
고통과 죄를 통해서 부서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상승하고 성취하며 취득하는데 사용하던 에너지를
가난과 겸손과 섬김이라는 거룩한 에너지로 바꾸는 변화를
영적 성장의 주요한 과제로 삼기 시작한다.
상처와 실망들이 쌓여 불가피하게 타인들을 비난하고
분노를 터뜨리고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면서
‘나는 옳지만 너는 틀렸다’
‘나는 심판할 권리가 있으며 나의 심판은 정당화하기 위하여
에너지를 계속 사용하겠다.’ 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쓰레기처럼 여기게 된다.
십자가의 길이라는 과정을 통해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죽을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
자유를 주는 생명의 길이 희망의 등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죽음과 부활이라는 주기를 여러 차례 겪게 될 것이지만
거기서 배우는 지혜는 새로운 차원의 삶에 희망을 주었다.
거룩함은 주어지고 받는 선물이다.
하느님을 향하는 사람의 갈망에
사람을 향하는 하느님의 갈망이 만나는 신비의 축제다.
거룩함은 일상에서 발견하는 하느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 아는 지식과 관련이 있다.
하느님 밖에서 존재하던 사람이 하느님 안에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놀라운 인식의 새 지평이 열린다.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똑같이 햇빛과 비를 주시는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나의 눈으로만 바라보던 아버지를
아버지의 눈으로 나와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성프란치스코는 가난을 통해 해방되는 자유를 배웠으며
자유롭기 위해 가난을 선택하는 후반기 인생을 살았다.
이제는 그 길을 내가 걸으려 한다.
훌륭하게 출발할 수 있었던 도덕과 율법은 감옥이 되고
믿음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해방과 자유를 위한 도전에
성령의 역사가 자신을 지배하도록 허용하는 자유를 배웠기 때문이다.
질서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불타는 열정이 만든 희생자들을 위해
조용한 헌신의 삶을 살아야겠다.
내 인생의 아침에 위대하던 것이
내 인생의 오후엔 사소한 것이 되었다.
우월한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용했던
왕의 이미지와 통제하던 힘을 내려놓고
너그럽게 놓아주고 부드럽게 안아주는 자비의 품으로
기르고, 용서하고, 살려내면서 전부를 쏟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