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 축일로 바오로 해를 마감합니다.
저도 한 해를 바오로 서간을 중심으로 지내며
그 어느 해보다도 바오로의 풍모를 마음에 새긴 한 해였습니다.
한 해를 보낸 나에게 남은 바오로 사도에 대한 인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프란치스코와 관련해서
일부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이 보이는 태도와 비슷합니다.
자신은 프란치스코를 사랑하여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지만
자식이 프란치스칸 수도자가 되는 것은 반대합니다.
프란치스코처럼 사는 것이 멋있기는 해도
너무 힘들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에게 남은 바오로에 대한 인상도 비슷합니다.
너무 치열하고 고단한 일생이었다는 느낌입니다.
쉼이랄까 삶의 즐거움은 전혀 없이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물러섬 없이 달려간 인생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도 다음과 같이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어제는 작정을 하고 등산과 마라톤을 하였습니다.
지난 금요일, 마라톤을 조금 심하게 하여 다리가 뭉친 곳이 있어서
풀어주기 위해 또 등산을 겸하여 마라톤을 한 것입니다.
안산을 한 시간 등산하고
그 중턱에서 한 시간 마라톤을 하기로 하였는데
등산을 빠른 속도로 마치고 30분 정도 뛰니 벌써 힘이 들었습니다.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생기는데도 끝까지 뛰었습니다.
한 시간을 다 달리고 윗몸 일으키기까지 한 다음
하늘을 보고 한동안 그대로 누워있었습니다.
그때 바오로 사도가 오늘 독서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
이런 말은 자신의 정과 성을 다 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다른 데 한 눈 팔지 않고
힘도 남김없이 다 쏟아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
그 하나에 오롯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마라톤을 하다 보면
처음에 힘이 있고 몸을 풀기 위해 천천히 뛸 때는
뛰면서 풍경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도 보지만
얼마 지나 힘도 지치고 제 속도로 뛰기 시작하면
아무 생각 없이 오직 뛰는 자신만이 남습니다.
다른 생각이 없이 오직 자신과 대면하게 되는 것,
이것이 있는 힘을 다 할 때
정성을 다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뿌듯한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대단히 교만한 말처럼 들리지만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어제 마라톤을 하는데 젊은 친구도 뛰고 있었습니다.
몸매나 뛰는 모습이 제대로 배우고 많이 뛴 사람의 그것이었습니다.
은근히 그 젊은 친구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생기는데
얼른 그런 마음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옛날 같았으면 느리게 달리고 남보다 뒤지는 저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할 수도 있었지만
어제는 느리고 뒤지는 저에 대해
훌륭히 해냈다고 칭찬을 할 수 있었습니다.
빨리 달린 내가 아니라
다 달린 나에게 만족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겸손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자기 인생을 사랑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 가치를 모르고
다른 사람의 채찍이 무서워 억지로 달린 인생은
이런 회고를 할 수 없습니다.
사랑 때문에 스스로 달리고
사랑 때문에 고통을 자청한 사람의 인생만이
고통마저 사랑이 되어 더 할 수 없는 행복감 가운데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저도 바오로처럼 내 인생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
저도 한 해를 바오로 서간을 중심으로 지내며
그 어느 해보다도 바오로의 풍모를 마음에 새긴 한 해였습니다.
한 해를 보낸 나에게 남은 바오로 사도에 대한 인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프란치스코와 관련해서
일부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이 보이는 태도와 비슷합니다.
자신은 프란치스코를 사랑하여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지만
자식이 프란치스칸 수도자가 되는 것은 반대합니다.
프란치스코처럼 사는 것이 멋있기는 해도
너무 힘들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에게 남은 바오로에 대한 인상도 비슷합니다.
너무 치열하고 고단한 일생이었다는 느낌입니다.
쉼이랄까 삶의 즐거움은 전혀 없이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물러섬 없이 달려간 인생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도 다음과 같이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어제는 작정을 하고 등산과 마라톤을 하였습니다.
지난 금요일, 마라톤을 조금 심하게 하여 다리가 뭉친 곳이 있어서
풀어주기 위해 또 등산을 겸하여 마라톤을 한 것입니다.
안산을 한 시간 등산하고
그 중턱에서 한 시간 마라톤을 하기로 하였는데
등산을 빠른 속도로 마치고 30분 정도 뛰니 벌써 힘이 들었습니다.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생기는데도 끝까지 뛰었습니다.
한 시간을 다 달리고 윗몸 일으키기까지 한 다음
하늘을 보고 한동안 그대로 누워있었습니다.
그때 바오로 사도가 오늘 독서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
이런 말은 자신의 정과 성을 다 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다른 데 한 눈 팔지 않고
힘도 남김없이 다 쏟아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
그 하나에 오롯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마라톤을 하다 보면
처음에 힘이 있고 몸을 풀기 위해 천천히 뛸 때는
뛰면서 풍경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도 보지만
얼마 지나 힘도 지치고 제 속도로 뛰기 시작하면
아무 생각 없이 오직 뛰는 자신만이 남습니다.
다른 생각이 없이 오직 자신과 대면하게 되는 것,
이것이 있는 힘을 다 할 때
정성을 다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뿌듯한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대단히 교만한 말처럼 들리지만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어제 마라톤을 하는데 젊은 친구도 뛰고 있었습니다.
몸매나 뛰는 모습이 제대로 배우고 많이 뛴 사람의 그것이었습니다.
은근히 그 젊은 친구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생기는데
얼른 그런 마음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옛날 같았으면 느리게 달리고 남보다 뒤지는 저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할 수도 있었지만
어제는 느리고 뒤지는 저에 대해
훌륭히 해냈다고 칭찬을 할 수 있었습니다.
빨리 달린 내가 아니라
다 달린 나에게 만족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겸손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자기 인생을 사랑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 가치를 모르고
다른 사람의 채찍이 무서워 억지로 달린 인생은
이런 회고를 할 수 없습니다.
사랑 때문에 스스로 달리고
사랑 때문에 고통을 자청한 사람의 인생만이
고통마저 사랑이 되어 더 할 수 없는 행복감 가운데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저도 바오로처럼 내 인생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
저는 심장 혈관이 약해서 달리기는 할 수 없어요~
더구나 오래달리기는 꿈조차 꿀 수도 없구요..^^;
달려 가는 사람들을 끝까지 지켜봐 주고,
그 사람이 나의 Zone으로 달려올 때,
시원한 물 한병과 물수건으로 땀을 닦아주고,
사라질 때 까지 박수치며 격려 해 주는 것..
그 만큼은 저도 잘 할 수 있어요..^^*
모든 것들을 특히 고통을 사랑 하면서
저의 마음의 마라톤을 달려 갑니다.
................
그분의 믿음과 열정이 이 시대 그대로 선교의 장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