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저는 오늘 복음에 대해서 ‘맞다.’ 하는 느낌이 선뜻 들지 않습니다.
아무리 천사를 시켜서 한다지만 하느님이란 양반이 마지막 날에
쩨쩨하게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을 하나하나 가리는 짓이나 하실까?
그런 하느님이라면 저는 하느님으로 받들지도 믿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 부모도 못된 부모가 아니라면
잘 살고 잘 하는 자식은 들라 하고
그렇지 않은 자식은 집에 들이지 않는 그런 짓 하지 않으니
하느님은 절대로 그러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누구를 마다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않지요.
하늘나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염원과 갈망이 우리게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기득권자마냥
이미 얻은 것, 가진 것 놓지 않으려 하여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바람이 없습니다.
시큰둥, 이것이 우리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지금 저희 수도원에 와서 일하시는 분들은 참으로 열심히 하십니다.
내 집 일처럼 성심성의(誠心誠意)껏 하십니다.
어제는 일을 끝마쳐 갈 무렵 내부공사의 책임자 되시는 분이
어질러 놓은 것 치우고 복도에 물걸레질을 하시는 것입니다.
작년부터 저희 수도원 일을 하기 시작하셨는데
그 이후로 전국에 있는 저희 수도원을 돌며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저희 형제들한테 교리도 배우고 영세도 받았습니다.
이 후 이분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살고 계십니다.
부부 사이가 아주 좋아졌다고 합니다.
얼굴에 천국을 이미 살고 있음이 보입니다.
저희 일을 하면서 돈 벌 생각은 접어버린 듯 보입니다.
이분은 저희의 작은 사랑을 얼마나 큰 사랑으로 받아들이시는지
사랑을 표하기도 민망할 지경입니다.
이렇듯 새로움을 사시기에 율법학자 같은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태양 아래 아무 새로운 것 없다 하며 도사인 척 하지만
이분에 비하면 저는 진정 늘 새로움을 사는 데 실패한 인생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헌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고 하시는데
옛날 것만 가득 들어차 있고 새 것은 없어
노상 나오는 것이 옛날 타령만 하는 늙은이가 되지 말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라고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옛것이 율법이라면
새로움은 다른 것이 아니고 사랑의 계명이겠지요.
늦게야 사랑을 배우고 깨달았지만
작은 사랑을 크게 받아들이고
위선 떨지 않고 사랑하는 이 분에게서
하느님께서 매일 새롭게 주시는 은총들을
새록새록 받아들이며 살라는 자극을 받으며 요즘은 살아갑니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저는 오늘 복음에 대해서 ‘맞다.’ 하는 느낌이 선뜻 들지 않습니다.
아무리 천사를 시켜서 한다지만 하느님이란 양반이 마지막 날에
쩨쩨하게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을 하나하나 가리는 짓이나 하실까?
그런 하느님이라면 저는 하느님으로 받들지도 믿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 부모도 못된 부모가 아니라면
잘 살고 잘 하는 자식은 들라 하고
그렇지 않은 자식은 집에 들이지 않는 그런 짓 하지 않으니
하느님은 절대로 그러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누구를 마다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않지요.
하늘나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염원과 갈망이 우리게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기득권자마냥
이미 얻은 것, 가진 것 놓지 않으려 하여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바람이 없습니다.
시큰둥, 이것이 우리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지금 저희 수도원에 와서 일하시는 분들은 참으로 열심히 하십니다.
내 집 일처럼 성심성의(誠心誠意)껏 하십니다.
어제는 일을 끝마쳐 갈 무렵 내부공사의 책임자 되시는 분이
어질러 놓은 것 치우고 복도에 물걸레질을 하시는 것입니다.
작년부터 저희 수도원 일을 하기 시작하셨는데
그 이후로 전국에 있는 저희 수도원을 돌며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저희 형제들한테 교리도 배우고 영세도 받았습니다.
이 후 이분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살고 계십니다.
부부 사이가 아주 좋아졌다고 합니다.
얼굴에 천국을 이미 살고 있음이 보입니다.
저희 일을 하면서 돈 벌 생각은 접어버린 듯 보입니다.
이분은 저희의 작은 사랑을 얼마나 큰 사랑으로 받아들이시는지
사랑을 표하기도 민망할 지경입니다.
이렇듯 새로움을 사시기에 율법학자 같은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태양 아래 아무 새로운 것 없다 하며 도사인 척 하지만
이분에 비하면 저는 진정 늘 새로움을 사는 데 실패한 인생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헌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고 하시는데
옛날 것만 가득 들어차 있고 새 것은 없어
노상 나오는 것이 옛날 타령만 하는 늙은이가 되지 말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라고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옛것이 율법이라면
새로움은 다른 것이 아니고 사랑의 계명이겠지요.
늦게야 사랑을 배우고 깨달았지만
작은 사랑을 크게 받아들이고
위선 떨지 않고 사랑하는 이 분에게서
하느님께서 매일 새롭게 주시는 은총들을
새록새록 받아들이며 살라는 자극을 받으며 요즘은 살아갑니다.
일상 생활에서 聖人 이 됩니다.
뙤약 볕에서 옷이 흠뻑 젖도록 일 하시는 분 ,
문을 조용히 닫으시는 분 ,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분 ,
주방 일 열심히 하시는 분 모두 聖人 이 되시어
하느님 나라에 살고 계십니다.
그 모습에서 사랑이, 거룩함이 보입니다.
처절한 삶의 현실 앞에서 철학을 말하고,
사랑의 수혈이 시급한 상황에서 율법을 말하는,
뻣뻣하고 무딘 저를 부끄럽게 하네요.
무딘 마음을 살같이 부드럽게 하는,
오늘이 되도록 마음을 쓰겠습니다.
천국은 죽어서가는 것만이 아니라 여기서 천국을 살 때
갈 수 있음을 깊이 새기면서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