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인 ‘생명의 빵’에 대해서 유다인들은 여전히 의심을 품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어리석은 모습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해서 얼마나 깨닫고 있으며 삶 가운데서 실천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 직접 빵이 되어 우리에게 나타나셨고, 우리들 또한 이러한 생명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은 오늘 화답송에 나오는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와 같이 참 기쁨에로의 초대인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 각자가 예수님 안에서 삶의 참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메마른 골짜기를 걷고 있다면 오늘 복음 안에서 기쁨의 샘물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복음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하고 말씀하셨을 때, 유다인들은 그분을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출생지와 가족관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 서로 수군거리며, 예수님의 말씀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하고 꾸짖으신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 신앙인들에게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말씀이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출생지와 가족관계만 갖고 그 사람의 생(生)을 모두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자기들끼리 추측하고 판단하는 잘못을 드러내는 것을 볼 때, 우리 인간의 왜곡된 마음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삶 가운데서 우리에게 밀려드는 많은 골치아픈 일들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좋은 관계는 쉽게 지나가지만, 나쁜 관계는 때로 오랜 상처로 남아 우리를 힘들게 한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이유가 바로 왜곡되어 나타나는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살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고, 상대방의 마음도 잘 알고 있다고 단정하며, 쉽게 판단해버리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지나가며 나와 상대방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의 생각과 판단이 절대불변의 진리로 여겨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마음들이 바로 내가 무엇을 알고 있다는 큰 착각인 것이다.
내가 저 사람을 알고 있고 나를 알고 있으며, 어떤 사실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덫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오직 알 수 있는 것은 오늘 복음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에서와 같이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모든 것을 실행하신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지식과 교만을 내려놓아라는 말씀이리라.
‘생명의 빵’이 되어라는 예수님의 말씀 또한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힘으로 ‘생명의 양식’이 되어 이 세상에 사랑과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힘 안에서 모든 좋은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참 기쁨을 맛보지 못함은 바로 선(善)함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 ‘자족자위’하는데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복된 가난이여! 크신 사랑이여!
예수님께서 직접 빵이 되어 우리에게 나타나셨고, 우리들 또한 이러한 생명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은 오늘 화답송에 나오는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와 같이 참 기쁨에로의 초대인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 각자가 예수님 안에서 삶의 참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메마른 골짜기를 걷고 있다면 오늘 복음 안에서 기쁨의 샘물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복음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하고 말씀하셨을 때, 유다인들은 그분을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출생지와 가족관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 서로 수군거리며, 예수님의 말씀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하고 꾸짖으신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 신앙인들에게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말씀이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출생지와 가족관계만 갖고 그 사람의 생(生)을 모두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자기들끼리 추측하고 판단하는 잘못을 드러내는 것을 볼 때, 우리 인간의 왜곡된 마음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삶 가운데서 우리에게 밀려드는 많은 골치아픈 일들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좋은 관계는 쉽게 지나가지만, 나쁜 관계는 때로 오랜 상처로 남아 우리를 힘들게 한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이유가 바로 왜곡되어 나타나는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살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고, 상대방의 마음도 잘 알고 있다고 단정하며, 쉽게 판단해버리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지나가며 나와 상대방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의 생각과 판단이 절대불변의 진리로 여겨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마음들이 바로 내가 무엇을 알고 있다는 큰 착각인 것이다.
내가 저 사람을 알고 있고 나를 알고 있으며, 어떤 사실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덫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오직 알 수 있는 것은 오늘 복음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에서와 같이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모든 것을 실행하신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지식과 교만을 내려놓아라는 말씀이리라.
‘생명의 빵’이 되어라는 예수님의 말씀 또한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힘으로 ‘생명의 양식’이 되어 이 세상에 사랑과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힘 안에서 모든 좋은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참 기쁨을 맛보지 못함은 바로 선(善)함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 ‘자족자위’하는데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복된 가난이여! 크신 사랑이여!
하느님과의 관계도 좋다고 하십니다.
오직 나의 시선을 하느님께로 만 향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