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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9주간 목요일(나해)

by 이대건 posted Aug 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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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저는 얼마나 용서를 해주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신부가 되고 나서야 엄청 용서를 많이 해주면서 살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고해성사 때마다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요즘 저는 용서의 사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용서를 할까요?
용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을 했을 때,
우리는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그것이 평범한 일이라면 그렇게 힘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의 뒷통수를 강하게 내려치는 것이라면
그 고통은 오래남고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는 마음에 담아둘수록 잘 해결되는 것 같지만,
종종 다시금 되살아나 나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용서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용서하는 우리에게 자유로움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더 이상 아파할 필요, 아파할 이유는 눈 녹듯 사라지고,
우리 안에 평화와 자유를 선사하시며
우리가 다시 사랑받을 수 있도록 돌려놓으십니다.

용서는 상대방에게 하는 것이지만,
결국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진정 마음을 다해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제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해성사를 청하는 이에게
죄를 용서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늘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도 하지만,
당신이 사랑받기 위해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우리을 치유하고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용서는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이며,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배운 사랑의 실천이고,
그분을 닮아가려는 우리의 노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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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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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요셉 2009.08.13 09:47:36
    그렇습니다.

    용서의 대상이 그토록 믿었던 사람일수록
    그 믿음에 비례해서 용서는 더 더욱 어려워지더군요.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했을 때 그를 용서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나에게 달려있는, 공이 나에게 넘어왔음에 고민해야 하지만,

    반대로 내가 용서 받아야하는 상황에서 상대가 용서해 줄 마음이 없을 때
    그것처럼 괴로운 것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이 부분이 어려워지는 것은
    그 또한 인간이 갖는 한계다 싶기도 하지요.

    하느님만이 완전하시면서도
    부족한 우리 모두를 품을 수 있기에 하느님이 하느님이시겠지요.

    오늘도 “우리를 치유하고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용서는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이며,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배운 사랑의 실천이고,
    그분을 닮아가려는 우리의 노력‘에 마음을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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