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오늘 요한의 서간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한다는
것을 당연한 듯이 얘기하는데 실제 우리 삶을 보면 부모는 사랑하면서
형제와는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이것을 볼 때 서간의 말씀이 틀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부모를 사랑하는 것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말씀을 깊이 이해하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 경우 형제만 사랑치 않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사랑치 않는 겁니다.
아무도 사랑치 않고 자기만 사랑하는 것이거나
자기중심적으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주시면서 세리나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경우를 말씀하신 바가 있지요.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이 경우 부모는 자기를 사랑하기에 사랑한 것이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경쟁하는 형제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며
그러므로 진정 부모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으로 사랑한 것입니다.
반대로 부모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다시 말해서 자기중심이 아니라
부모중심으로 사랑한다면 나와 마찬가지로 부모가 사랑하는 다른 자녀들,
곧 형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지만, 극단적인 비교를 한다면 반려견을 싫어하는 사람이 나는 사랑한다면서 내 반려견을 몹시 싫어하고 심지어 학대까지 한다면
그가 사랑한다거나 존중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이 진정 사랑이라면,
사랑이 진정하면 할수록 좋아하는 것과 달라야 합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사랑하면 할수록 싫은 것을 초월합니다.
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싫은 것을 수용함으로써
또는 좋은 것을 희생함으로써 그를 위한 사랑이 더 뜨거워집니다.
그래서 사랑하기에 싫은 것이 좋아지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미친 현상이요 사랑에 미친 짓이지요.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과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바라던 식사였습니다.
그와 식사하는 것만으로 너무 황홀하고 영광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만남이기에 나는 그의 식성을 알지만
그는 나의 식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더 사랑하는 내가
그에게 선택권을 줬는데 내가 평소 싫어하는 것을 그가 선택합니다.
그래도 나는 그 선택에 기꺼이 '예스' 합니다.
그와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먹는 것은 뭘 먹어도 좋은 것입니다.
이 정도가 돼야 나의 '좋고 싫음'을 초월하고,
내 중심성을 초월한 진정한 사랑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사랑의 경지는 도달하기 쉽지 않기에 욕심부릴 수는 없고,
조급하게 성취할 수도 없지만 나의 목표로 삼을 수는 있겠지요.
하느님 사랑을 포함하여 나의 모든 사랑이 이런 경지에 오르게 되기를
바라며 빌어마지않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사랑, 두 방향의 행보)
http://www.ofmkorea.org/184651
16년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힘 들지 않게 사랑하는 법)
http://www.ofmkorea.org/85792
15년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우리도 불이사랑을 하자!)
http://www.ofmkorea.org/73659
14년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완전한 자유인인 성령의 하수인)
http://www.ofmkorea.org/59350
13년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이웃을 하느님처럼)
http://www.ofmkorea.org/47201
11년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감각에서 초감각으로)
http://www.ofmkorea.org/4737
10년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사랑의 운명)
http://www.ofmkorea.org/3478
09년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내리 사랑)
http://www.ofmkorea.org/2004